“어떻게 다시 살 수 있습니까?”
36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1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 부활처럼 답답한 얘기가 없습니다. 어떻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인지 아무리 들어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2. 그러나 부활을 이미 경험한 것처럼 믿는 사람들에게는 부활에 코웃음을 치는 것보다 안타까운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대체 얻는 게 무엇입니까?
3.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내 눈을 가릴 뿐입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에 부활의 거부가 너무 가슴 아픈 일입니다.
4. 그는 적절한 비유를 찾아냅니다. 씨앗과 식물의 대비입니다. 죽은 것 같은 씨앗 하나에 나무 한 그루가 들어있습니다. 완전히 다른 형상입니다.
5. 그 뿐입니까? 조그만 알 하나에도 개구리가 들었고 연어가 들었고 제비가 들었습니다. 참으로 신비한 일입니다. 각각 전혀 다른 형체들입니다.
6. 중요한 원리는 무엇입니까? 씨앗이 죽지 않으면 나무가 살지 못하고, 알이 깨지지 않으면 새가 날지 못합니다. 먼저 죽고 다시 사는 원리입니다.
7. 또한 죽음을 맞는 형태와 다시 사는 형태의 차이입니다. 씨앗의 모양과 알의 모습은 서로 비슷할지 몰라도 다시 사는 모습은 천차만별입니다.
8.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다만 알맹이지만 하나님은 종자마다 다른 형체를 주시지 않습니까?”
9. 맞습니다.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각각 다 다릅니다.”
10. 바울은 부활이 그와 같다고 설명합니다. 뿌리는 씨앗이 죽어야 살아나는 것과 같이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11. 부활은 육신의 몸을 심어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욕된 것, 약한 것으로 심지만 강하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12. 신앙의 본질은 부활신앙입니다. 비록 땅에서 살지만 하늘을 바라보며 사는 까닭은 우리 안에 이미 하늘의 씨앗이 잉태되었고 이 씨앗이 죽어야 새 생명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새 모습으로 드러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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