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가 어디 있느냐”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성경의 주제가 창조, 십자가, 부활입니다. 성령의 존재에 대해서도 선뜻 동의하지 못합니다.
2. 1세기 때도 다르지 않습니다. 가장 믿기 어려운 것이 사실은 십자가의 죽음이 구원과 관련된 것으로,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주장입니다.
3. 이 주장은 유대인과 헬라인 둘 다 받아들이기가 불가능합니다. 유대인에게는 죄인이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야말로 저주 중의 저주입니다.
4. 헬라인들에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자가 구원자라는 주장만큼 허황된 얘기가 없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들 중에 그런 무기력한 신은 없습니다.
5.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믿음의 결과입니다. 헬라인이건 유대인이건 구원을 받은 자들은 이구동성 십자가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증언합니다.
6. 그 증언이 얼마나 강력한지 3백년만에 로마제국이 두 손을 들었습니다. 어떤 제국의 권력도 십자가의 증인들 입을 완전히 막지 못했습니다.
7. 왜 그랬을까요? 십자가와 부활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믿음, 십자가의 믿음은 죽음을 초월하는 생명입니다.
8. 또한 보이는 것에 묶여 사는 현실을 초월하는 지혜입니다. 초월적 지혜는 근원적인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합니다. 진리 안의 자유입니다.
9. 세상이 보기에는 한없이 어리석습니다. 왜 그렇게 믿느냐고 조롱 받습니다. 그러나 빛 가운데 걸어가는 것이 어떻게 어리석은 결정입니까?
10. 거짓에서 빠져 나와 진리의 길을 가는 것이 어떻게 바보 같은 선택입니까? 증오와 불안에서 벗어나 기쁨으로 걷는 걸음이 왜 잘못입니까?
11. 비록 투자한 것이 손실이 나고, 아이가 원하는 학교에 진학을 못하고, 직장 정기인사에서 누락이 되고, 더구나 병을 얻어도 견딜 수 있습니다.
12. 구원은 그런 것입니다. 어떻게 견딥니까? 끝을 알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을 보고 가기 때문입니다. 살아서 이 믿음 가지면 죽어도 삽니다. 이 구원 그냥 안 받겠다는 것이 세상의 지혜입니다. 그리고는 죽음을 향해 질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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