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하늘이 어젯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웃고 있습니다. 과거를 이야기하는 텔레비전 속에 '게릴라성'이란
수식어를 동반한 폭우의 상흔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많은 목숨과 재산을 앗아 간 이 재난은 아무런 준비 없이
살아온 우리네 자화상을 드러내 줍니다. 그러나 그 폭우가 쏟아지던 시간, 저는빗줄기만큼 굵은 눈물을 흘리며
기도의 밤을 보내는 십대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중,고등부 학생들의 여름 수련회 현장이었습니다.
설교자는 '요나'의 삶을 설명했습니다. 오늘 우리 민족에게 주신 여러 가지 아픔도 따지고 보면 그리스도인들의
자각과 회개, 그리고 십자가의 부재에 기인하다고 했습니다. 2,000명에 이르는 청소년들은 이날 저녁, 그 굵은
빗방울 속에서 여린 마음속 깊이 설교의 의미를 하나하나를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빗물에 축 젖어 버린 온몸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은 그들은 한 시간이 넘도록 울부짖었습니다. 그들의 학교와 교회와
가정의 아픔이 자신의 그릇된 신앙 때문이었음을 고백했습니다. 계속되는 천둥으로 그들의 기도하는 모습이 또렷한
윤곽으로 그려졌습니다. 세례였습니다. 나를 버리고 그리스도의 삶을 살기로 선언하는 그 소중한 헌신에 대해 하나님이
주신 빗물의 세례였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아프리카으 한 교도소에서 한 차례 성령의 은혜가 내린 뒤 죄수들이 침례를 받고 싶어
하자 갑자가 하늘에서 큰 비가 내림으로써 세례를 대신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젯밤 내린 비는 아마 그런 의미까지
동반한 비였을 것입니다.
/ 사람의 향기, 신앙의 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