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슈사쿠의「침묵」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일본 선교를 떠난 한 신부, 늘 순교를 사모하던 신부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배교했다는 소문을 듣고 로마에서는 사실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다른 신부를
파송합니다. 그리고 그 신부의 배교의 진상이 밝혀집니다. 작은 어촌에 들어왔던 신부의 선교로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못마땅히 여기던 영주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계획하다가, 신부에게 제안을 합니다. "만일 당신이 예수님을 부인하면 당신과 마을 사람들을 죽이지는
않겠다." 그리고 영주는 예수님의 얼굴이 박힌 책을 밟고 지나갈 것을 말합니다. 선택해야 할 운명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신부가 괴로워하고 있는데 첵에 그려진 예수님이 신부에게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밟아라, 밟아. 나는 밟히기 위해 이 땅에 왔다!" 이 사실 때문에 그 신부는 침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에 대해 침묵하십니다. 그분 자신의 모두 짊어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깨달을 때까지 주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몫의 십자가까지 주님이 모두 지고
계신 것입니다. 분명히 주님은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아무 것도 변명하거나 항의하지도 않으십니다.
하지만, 주님의 침묵 속에는 엄청난 사랑의 함성이 숨어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고 무덤에 묻히는 것만이
아니라 다시 그 몸이 찢김을 당하고 다시 수욕을 받으시더라도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밟아라, 밟아. 나는 밟히기 위해 존재한다!"
/ 겨울에서 봄에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