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생각하시는 교회란 과연 어떤 것일까?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안에 있는 우리가 생각하는 교회상과 밖에 있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교회상도 중요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생각하는 교회상이다. 그분이 곧 교회의 설립자요 머리요 심판자이시기 때문이다.
아무리 봐도 교회는 특이한 공동체다. 팔레스타인에서 작은 모임으로 시작된 교회는 독특한 다인종, 다국적, 다문화
공동체로 발전했다. 다른 종교들은 특정 민족으로 제한되기에 ‘민족’ 종교라 불러도 무방하다. 오직 기독교만 진정한
세계 종교라 할 수 있다. 예수님만이 모든 인종, 계층, 종교에서 신봉자들을 얻으셨기 때문이다.
세상에 영원한 안전을 보장받은 교회는 없다. 교회는 끊임없이 시험받고 있다.
이그나시우스 주교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를 보면, 그들은 예수님의 명령을 잘 받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교는 편지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후 에베소 교회는 다시 침체되어 중세 즈음에는 기독교적 증거를
찾아볼 수도 없었다. 트렌치 대주교에 따르면 그곳을 방문하던 한 여행객이 “거기서 그리스도인을 세 명밖에 보지
못했는데 그나마 바울과 요한의 이름조차 거의 들어보지 못했을 정도로 무지하고 무관심했다.”
에베소를 향한 예수님의 경고는 오늘날 우리에게 하시는 경고다. 우리가 고집스레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교회도 불이 꺼질 것이다. 사랑 없는 교회에는 빛도 없다. 교회는 사랑이 타오를 때만 빛을 발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사실상 죽어 있다. 건물은 멀쩡하고 사역자들은 사역하고 교인들은 모일지 모르나 그들의
촛대는 이미 옮겨졌다. 교회는 어둠 속에 잠겨있다. 한 줄기의 빛도 새어 나오지 않는다. 빛이 없다.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도 너무 늦기 전에 이 경고에 귀 기울여야 한다.
주후 156년경 2월 2일이었다. 교인들의 간청으로 시외에 피신해 있던 덕망 있는 주교는 은신처까지 추적당한 끝에
결국 잡혔다. 그는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자기를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 음식과 물을 대접했고, 기도할 시간을
청하여 그들을 물린 뒤 두 시간 동안 기도했다.
함께 시내로 돌아오면서 담당 장교는 그에게 신앙을 버릴 것을 강요했다. “황제에게 제사를 지내서 나쁠 것도 없잖소?”
그러나 폴리캅은 거부했다. 도착하자 그들은 그를 거칠게 마차 밖으로 밀쳐내 원형 극장의 총독 앞으로 데려갔다.
총독은 그에게 “목숨이 아깝지도 않으냐! … 시저의 이름으로 맹세하라”고 권한 뒤 계속 말했다. “맹세하라, 그럼
내가 그대를 풀어 주겠다. 그리스도를 욕하라!” 폴리캅은 이렇게 대답했다. “지난 86년 동안 그분을 섬겼고 그분은
내게 잘못하신 일이 하나도 없소. 그런데 내가 어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모독할 수 있단 말이오?”
총독은 다그쳤다. “시저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못하겠느냐 … 내게는 사나운 맹수들이 있다. 네가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맹수들 앞에 던져 버리겠다.” “맹수들을 부르시오.”
“네가 맹수들을 얕보니 내 불로 그대를 죽여 주겠다.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자 성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장작을 모아 더미를 쌓았다. 화형 기둥 옆에 선 폴리캅은 자기를 묶지 말아달라고
청한 뒤 기도했다. “오 전능하신 주 하나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여. 저희는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 오늘 이 시간 저를 그리스도의 잔에 동참하기에 합당한 자로 여기셔서 순교자들의 대열에 두시니
감사합니다.” 장작더미에 불이 붙었다. 그러나 바람 때문에 불길이 그에게 닿지 않아 고통이 연장되자 한 병사가 칼로
그를 찔렀고 그의 고통은 끝이 났다.
- ‘예수님이 이끄시는 교회’ 중에서
안에 있는 우리가 생각하는 교회상과 밖에 있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교회상도 중요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생각하는 교회상이다. 그분이 곧 교회의 설립자요 머리요 심판자이시기 때문이다.
아무리 봐도 교회는 특이한 공동체다. 팔레스타인에서 작은 모임으로 시작된 교회는 독특한 다인종, 다국적, 다문화
공동체로 발전했다. 다른 종교들은 특정 민족으로 제한되기에 ‘민족’ 종교라 불러도 무방하다. 오직 기독교만 진정한
세계 종교라 할 수 있다. 예수님만이 모든 인종, 계층, 종교에서 신봉자들을 얻으셨기 때문이다.
세상에 영원한 안전을 보장받은 교회는 없다. 교회는 끊임없이 시험받고 있다.
이그나시우스 주교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를 보면, 그들은 예수님의 명령을 잘 받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교는 편지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후 에베소 교회는 다시 침체되어 중세 즈음에는 기독교적 증거를
찾아볼 수도 없었다. 트렌치 대주교에 따르면 그곳을 방문하던 한 여행객이 “거기서 그리스도인을 세 명밖에 보지
못했는데 그나마 바울과 요한의 이름조차 거의 들어보지 못했을 정도로 무지하고 무관심했다.”
에베소를 향한 예수님의 경고는 오늘날 우리에게 하시는 경고다. 우리가 고집스레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교회도 불이 꺼질 것이다. 사랑 없는 교회에는 빛도 없다. 교회는 사랑이 타오를 때만 빛을 발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사실상 죽어 있다. 건물은 멀쩡하고 사역자들은 사역하고 교인들은 모일지 모르나 그들의
촛대는 이미 옮겨졌다. 교회는 어둠 속에 잠겨있다. 한 줄기의 빛도 새어 나오지 않는다. 빛이 없다.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도 너무 늦기 전에 이 경고에 귀 기울여야 한다.
주후 156년경 2월 2일이었다. 교인들의 간청으로 시외에 피신해 있던 덕망 있는 주교는 은신처까지 추적당한 끝에
결국 잡혔다. 그는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자기를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 음식과 물을 대접했고, 기도할 시간을
청하여 그들을 물린 뒤 두 시간 동안 기도했다.
함께 시내로 돌아오면서 담당 장교는 그에게 신앙을 버릴 것을 강요했다. “황제에게 제사를 지내서 나쁠 것도 없잖소?”
그러나 폴리캅은 거부했다. 도착하자 그들은 그를 거칠게 마차 밖으로 밀쳐내 원형 극장의 총독 앞으로 데려갔다.
총독은 그에게 “목숨이 아깝지도 않으냐! … 시저의 이름으로 맹세하라”고 권한 뒤 계속 말했다. “맹세하라, 그럼
내가 그대를 풀어 주겠다. 그리스도를 욕하라!” 폴리캅은 이렇게 대답했다. “지난 86년 동안 그분을 섬겼고 그분은
내게 잘못하신 일이 하나도 없소. 그런데 내가 어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모독할 수 있단 말이오?”
총독은 다그쳤다. “시저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못하겠느냐 … 내게는 사나운 맹수들이 있다. 네가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맹수들 앞에 던져 버리겠다.” “맹수들을 부르시오.”
“네가 맹수들을 얕보니 내 불로 그대를 죽여 주겠다.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자 성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장작을 모아 더미를 쌓았다. 화형 기둥 옆에 선 폴리캅은 자기를 묶지 말아달라고
청한 뒤 기도했다. “오 전능하신 주 하나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여. 저희는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 오늘 이 시간 저를 그리스도의 잔에 동참하기에 합당한 자로 여기셔서 순교자들의 대열에 두시니
감사합니다.” 장작더미에 불이 붙었다. 그러나 바람 때문에 불길이 그에게 닿지 않아 고통이 연장되자 한 병사가 칼로
그를 찔렀고 그의 고통은 끝이 났다.
- ‘예수님이 이끄시는 교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