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우리가 십자가에 대해 우리를 완전하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으로 인도하기에 충분하다는 인식을 갖고
살아간다면, 마치 몸이 산소를 배출하듯이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은혜가 흘러나올 것이다.
은혜 충만한 삶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삶이다. 만약 우리가 자신이나 투자 포트폴리오나
성공한 자녀들이나 소유물이나 성공적인 교회 사역 등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소망으로 여기고 살아간다면,
그때 우리에게 무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난다. 사실 내가 그것을 ‘특별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왜냐하면 그런 일이 우리에게 자주 일어나지 않아서 그렇게 보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 중에 은혜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너무나 적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호흡처럼 돼야 할 일이 특별하게 보이는 것이다. ‘은혜 호흡’은 기독교적 삶의
자연스러운 특징이다. 적어도 그렇게 돼야 한다. 은혜가 들어오고 은혜가 나가야 한다. 우리가 산소를 들이마시는 한
그것을 배출하지 않을 수 없듯이, 우리의 삶이 은혜로 충만하면 그 은혜를 주변 사람들에게 내뿜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 이처럼 우리 삶 속에서 은혜가 순환할 때 우리 삶은 변화한다. 그리고 부산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은혜가
흘러넘치게 된다. 은혜 호흡, 그것은 십자가를 자랑하는 삶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 은혜 호흡 / 해리 크라우스
살아간다면, 마치 몸이 산소를 배출하듯이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은혜가 흘러나올 것이다.
은혜 충만한 삶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삶이다. 만약 우리가 자신이나 투자 포트폴리오나
성공한 자녀들이나 소유물이나 성공적인 교회 사역 등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소망으로 여기고 살아간다면,
그때 우리에게 무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난다. 사실 내가 그것을 ‘특별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왜냐하면 그런 일이 우리에게 자주 일어나지 않아서 그렇게 보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 중에 은혜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너무나 적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호흡처럼 돼야 할 일이 특별하게 보이는 것이다. ‘은혜 호흡’은 기독교적 삶의
자연스러운 특징이다. 적어도 그렇게 돼야 한다. 은혜가 들어오고 은혜가 나가야 한다. 우리가 산소를 들이마시는 한
그것을 배출하지 않을 수 없듯이, 우리의 삶이 은혜로 충만하면 그 은혜를 주변 사람들에게 내뿜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 이처럼 우리 삶 속에서 은혜가 순환할 때 우리 삶은 변화한다. 그리고 부산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은혜가
흘러넘치게 된다. 은혜 호흡, 그것은 십자가를 자랑하는 삶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 은혜 호흡 / 해리 크라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