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을 나란히 함께 걸어가는 세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들은 시인, 박물학자, 그리고 제재업자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다. 시인의 마음은, 지금은 그의 키보다 몇 배 더 큰 거목이
잿빛 흙에서 작고 푸른 새싹으로 나오기 시작했던 몇 세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박물학자의 세계는 시인의 그것보다 더 작고 세부적이다. 그는 몇 백 년 된 나무들의 둥치에 끼어 있는
이끼가 어떤 종류인지를 알고 있다. 제재업자의 세계는 박물학자의 그것보다 더 작다. 그는 역사나
자연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목재에만 관심이 있다.
이 세 사람의 사고들은 동일한 하나의 외부적 세계를 세 개의 서로 다른 내부적 세계로 나누어 놓았다.
우리의 마음이 외부세계를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최종적인 상품이 결정된다.
‘예수님을 배신한 자’ 가룟 유다와 ‘예수님께 사랑 받는 자’ 요한은 동일한 외적 세계에 살았지만, 그 세계를
너무나 다르게 해석했다. 이런 구분은 가인과 아벨, 에서와 야곱, 그리고 사울과 다윗에게도 적용된다.
그러므로 이런 사실을 볼 때 우리는 상황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사람이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되는가가 결정된다.
/ 나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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