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한창 바쁠 때에 차에서 김밥 증으로 식사를 대신할 때가 종종 있다. 그때마다 차에서 비닐봉지를
들고 토할 준비를 하고 있던 예전을 떠올린다. 그 울렁거리던 차안에서 이제는 운전까지 하며 무언가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행복이다. 그리고 그렇게 먹는 이유가 즐겁게 할 바쁜 일이 있어서라는 것은 큰
감사의 제목이다. 네잎 클로버의 행운이 아닌, 세잎 클로버의 행복에 감사할 수 있게 된 것은 나의 소중한
재산이다.
아팠다는 경험이, 남들에게 다 말 못한 아픔이 있다는 것이 교만과 냉소의 이유가 된다면 그 이상 불행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돈이나 지식이 있다는 이유로 교만한 사람들이 불행한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또한 배타적 냉소주의의 극소수 운동권 출신들이 '너 감옥 갔다 와 봤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내가
아팠다는 사실은 이후 공부나 시험, 그리고 매일 매일의 생활 자체에서는 플러스가 되지 않았다. 암 걸렸다가
나았다고 가산점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약한 체력과 떨어진 면연력 등이 나의 미래 계획에 자꾸 걸림돌을
가져다 놓았다 ... ...
사실 지금까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픈 것이 자랑은 아니다. 교만과 냉소의 이유는 더더욱 될 수 없다.
돈 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고 꼴불견일진대 아팠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면 그건 정말 더 이상 약이 없다고 본다. 그래서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보따리
보따리 다 풀어 놓을 수 없었다.
내가 이제라도 부득불 자랑할 수 있는 것은 기나긴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고, 뒹굴뒹굴
구르며 울면서 그분과 나눈 사랑이야기이다. 그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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