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교육을 받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인생을 정의하여 죽음에 이르는 사람이라고 말을
합니다. 즉, 인생은 절망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구주 예수님은 인간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철학자들은 죽음에 이르는 병에 든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본론>
1. 인간은 왜 절망적인 존재인가?
인간은 절망적인 존재라고 철학자들이 말을 합니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심판을 받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사는 사람치고 절망에 이르지 않는 병에 들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다 아버지의 혈통을 통해서 태어났고 그 아버지는 바로 아담인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6절로 17절에 “야훼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여기에서 말하는 죽음이란 영적인 죽음을 말합니다. 육체야 반드시 죽지요. 영원히 살 육체를 가진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영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되어 있는데 예수 없이 세상 가운데 헤매는 사람은 영적으로 죽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7절로 19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이야말로 좌절감과 절망을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말인 것입니다. 여기는 희망이 하나도 없어요. 우리가 저주를 받아서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소산을 먹고 가는 곳마다 가시와 엉겅퀴가 앞을 막는다는 것입니다. 얼굴에 땀이 마를 날이 없고 고생을 하고 괴로운 가운데서 먹을 것을 먹고 그리고도 오래 사느냐 하면 흙으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절망을 상속으로 받고 태어난 것입니다. 부모를 잘 만나서 많은 재산을 상속으로 받아서 사는 사람은 기쁘겠지요. 그러나 우리 인생들은 우리 첫 부모인 아담을 통하여 죄와 죽음의 상속을 받았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보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인 아담의 죄 때문에 상속을 죽음으로 받아들였거니와 우리 자신도 모두 다 죄를 지어서 우리 후손에게 죄의 상속을 넘겨주고 있습니다.
시편 51편 5절에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범죄하는 영혼은 죽으리라고 성경에 말했는데 죄의 값은 사망으로 모두 다 사망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작정한 것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구주로 보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사람의 모양으로 태어나게 하시고 사람의 죄를 다 대신 짊어지고 청산하도록 놀라운 계획을 주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2. 예수님의 고난과 대속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사람들을 보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라고 했는데 왜냐하면 죄와 허물로 짓눌린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인 것입니다. 죄가 없는 사람들이 없지요. 허물이 없는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그 다음 심신에 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병이 들어서 고난을 당하고 병에서 놓여날 날이 없는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주와 가난으로 말미암아 피땀 흘려도 먹고 살기가 힘들고 그 다음에는 죽음과 음부에 끌려 들어가서 영원히 영혼을 불꽃 가운데서 고생하게 만드는 이러한 인생을 예수님은 바라보고 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우리 목에다 감아 놓은 마귀와 대결해서 싸운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의 목에 매단 죽음에 이르는 짐을 예수님은 다 대신으로 받아서 청산해 버리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요 10:10)
도둑이 우리에게 이익을 갖다 준 사람이 있겠습니까? 마귀는 도둑이기 때문에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이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구주이기 때문에 양에게 생명을 주시되 풍성히 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기 때문에 항상 마귀가 우리에게 괴로움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신포도주를 십자가에서 받으시고 난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 19:30)
(테텔레스타이)다 이루었다. 무엇을 다 이루셨습니까? 우리를 죽이려는 마귀의 모든 모사와 모든 궤계를 주님께서 다 청산해 버리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우리를 위하여 놀라운 역사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는 제자들에게 밭을 가는 농부의 예를 들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자기의 멍에 밑에 던지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농부가 밭을 갈 때 망아지들이 올바르게 밭을 가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어미 소 멍에 밑에 넣어 놓습니다. 멍에가 이렇게 있으면 어미 소가 그 멍에를 걸머지면 그 뒤에 줄로 수레가 묶여 있어서 ‘이랴.’ 하면 수레를 끌고 가기도 하고 수레를... 그러니 논을 갈든지 짐을 짊어지고 가든지 어미 소는 굉장히 괴롭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목이 다 벗겨지고 괴로움을 당하는데 새끼소는 그 멍에 밑에 넣어주고 새끼는 짐은 어미 수레에 묶어 놓습니다. 그래서 이랴~ 이랴~ 하면 어미 소는 온 몸에 힘을 잔뜩 넣어가지고서 애를 쓰면서 당기는데 새끼는 보니까 아무 짐도 없고 무겁지도 않고 편안하거든. 그래서 가면서 에이~ 엄마, 괜히 과장하지 마라. 보니까 짐 가벼운데 무슨 땀을 뻘뻘 흘리느냐. 야 이 새끼야~ 너 새끼니까 아직 모르지만 네가 자라서 나처럼 되면 이 멍에 봐라. 내 목에 있는 멍에! 멍에가 내 목에 걸리니까 무거워지지. 지금은 네 멍에 목에 안 건다. 내가 다 대신 짊어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우리가 짊어질 모든 짐을 다 짊어진 것입니다. 하나도 남지 않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모든 것을 다 청산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로 30절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내 멍에는 쉽고 내가 걸머진 짐은 가볍다. 너희들에게 조금도 고통스럽지 않다. 오직 믿음으로 나오면 그 믿음으로 주님께서 짐을 대신 짊어져 주십니다. 대신 짊어져 주는 것 얼마나 가난과 고통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주님이 대신 짊어져 주시는 것을 체험하고 감사하는지 모릅니다.
3.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
성경에는 십자가에서 주님이 값없이 선물로 은혜를 주실 때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를 십자가를 통해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셨다. 새사람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얼마나 위대한 선물입니까? 여러분과 내가 옛사람, 허물에 묶인 사람, 병에 끌려가는 사람, 저주와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 죽음과 절망에 이른 사람, 이것 옛사람인 것입니다. 이 옛사람에서 우리 주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해방을 주셔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시고 다시는 죄의 멍에를 매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을 이 은혜가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인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의롭다 하심을 선물로 받았다. 이 의롭다는 것은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의의 옷을 입으면 하나님 앞에 부끄럼 없이 설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음력설을 쇘으니까 어른을 공경하고 세배를 갈 때 깨끗하고 좋은 옷을 입지 않습니까? 노동자 냄새가 나는 그러한 의복을 입고 세배를 가지 못합니다. 하물며 하나님 앞에 나갈 때 우리의 의로운 행동이란 썩은 냄새가 나서 그것을 입고는 못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씻어서 죄가 한 번도 지음이 없는 그 행동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구주로 모시면 아멘 하십시다. 그러면 주님이 여러분에게 의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 의라는 것은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평생에 죄를 짓지 않은 의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용서와 의의 은혜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고 거룩함과 성령충만의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의롭다 함을 얻을 뿐 아니라 우리 삶이 거룩하게 되는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1절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거룩하게 되는 것은 굉장히 힘이 듭니다. 여러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담배를 떼는데 죽을 고생을 합디다. 우리 어릴 때 보니까 일하는 머슴들, 또 서민 백성들 먹고사는데 유일한 취미가 담배 피우는 것이 그 취미입니다. 그런데 그때 보리밥 한 그릇도 못 먹고 한 3분의 2쯤 채워 놓은 것을 먹고 난 다음 하루 종일 중한 노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릴 때 5살, 6살 때 뭣도 모르고 노동하는 사람들 곁에서 보았는데 담배가 떨어지면 꼭 미친 사람같이 되어요. 손발을 벌벌 떨고, 그리고 난 다음에 담배 있느냐고 이웃 밭을 향해서 고함을 치면 있다고 하면 십리도 멀지 않다고 그 담배 요것만 한 것 하나 피려고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것만 한 담배를 피우고 난 다음에 얼마나 만족해하는지 저는 일찌감치 담배 안 피우는 부모 밑에서 배웠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몰래 담배 피웠을지 몰라요. 나는 그런데 그 시아버님이 자기 맏며느리 데리고 왔는데 며느리에게 잘해주는 것 지금도 눈에 환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산 밑으로 내려가서 물을 퍼 올려 오는데 옛날에는 며느리가 그 물을 다 떠서 머리에 이고서 올라오거든요. 물이 자꾸 흐르니까. 그런데 그 시아버지가 논농사, 밭농사를 힘들게 하고 난 다음에 며느리 물 길어 올 때면 당연히 집으로 와서 그 물을 길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 길어 주고 난 다음에 저녁에 반드시 부부간에 말다툼하는 것을 듣습니다. 그것은 뭐냐면 시어머니가 며느리는 얼마나 좋기에 물 길어 주는데 나는 왜 안 해 주노? 그래서 그때는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그 시아버지가 세상을 뜨고 난 다음에 제단을 만들어 놓고 며느리가 매일같이 담뱃대에 불을 붙여서 시아버지 영정 앞에 놓았는데 하루는 온 집안이 떠나갈 듯이 통곡을 하고 울고 굉장합니다. 동리 사람들이 다 와보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참 효성스러운 며느리라고 하는데 왜냐하면 담뱃대에 담뱃불을 붙여서 시아버지 영전에 갖다 놓았다가 어디 갔다 오니까 담뱃대가 떨어졌어요. 아버님이 오셔서 한 대 피우고 가셨다. 내가 아버님 오신 것을 기다려서 만나지 못했으니 큰 불효를 했다고. 그렇게 슬피 울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죽으면 담배 피우러 오는가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런 것이 다 허물인 것입니다. 아버지를 우상화하고 죽은 영이 들어올 것이라고 해서 담뱃불을 피우고 그렇게 하는 것은 우상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인 것입니다. 이런 것도 주님께서 다 씻어서 거룩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 앞에서 더러워진 것을 다 씻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혜를 주시는 것이므로 거룩함과 성령충만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치료와 건강의 은혜를 주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한번 같이 읽으십시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우리가 병들어 있을 때 하나님께 병 고침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병 고침을 주시는데 어떻게 주시느냐. 대개 입술로 고백할 때 고백을 통해서 병 고침을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를 받고 내가 나았다고 믿었으면 시시각각으로 그것을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는 나음을 입었다. 자기 이름을 자기가 부르면서 "용기야, 너 나음을 입었다. 걱정하지 말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다." 그러면 그 말 자체가 치료의 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잖습니까?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았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말씀 속에 들어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자꾸 증거하고 증거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강력하게 되어서 병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도 또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을 우리에게 주시고 형통하게 해주신다. 형통이란 것 굉장히 좋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일이 잘 풀려 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를 믿고 의지하고 섬기면 주님이 우리의 삶을 형통하게 하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렇기 떄문에 우리가 큰소리하고 살 수 있는 것은 우리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의 어느 나라 사람보다 예수님을 더 충성스럽게 믿고 잘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희생을 자원하고 나온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형통하게 해주실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형통하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통하심이 여러분과 같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마음속에 나는 못산다. 안 된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는 형통한 사람이다.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셔서 저주를 다 청산하셨으므로 나는 형통한 사람이다. 그렇게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 3:13~14)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복주고 복주며 장성케 하며 장성케 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그 아브라함의 복을 예수를 통해서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복을 주시므로 어느 곳에 가든지 형통하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다는 것이 형통으로 나타나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 여러분이 되십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러한 삶을 살기를 원하고 그러한 삶을 통해서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이웃에 축복을 나눠주기를 원합니다. 어제 내가 텔레비를 보다가 교회 채널에 어떤 목사님이 나와서 나에게 한 펀치 먹이는 것을 들었습니다. 뭐냐면 요사이 목사들이 하나님은 복을 주신다고 성도들을 꾀어서 성도들을 게으르게 만들고 잘못된 믿음으로 들어가게 하는데 그 사람이 영향력이 너무 심해서 젊은 목사들이 다 따라가고 있는데 이를 중지시켜야 한다고... 그래서 제가 앉아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중지 못 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에 하나님이 말씀하기를 예수께서 저주를 다 짊어져서 아브라함의 축복을 대신 주셨다고 하셨으니 우리는 예수 믿고 다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은 자라 하나님이 주신 것 빼앗을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예수 믿는 우리 대한민국 백성들은 점점 더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더 많이 전도하고 더 많은 선교사를 보낼 수가 있습니다. 박수를 치니 좋은데 나도 한번 치겠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십자가를 통해서 부활과 영생천국의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육체는 땅에 파묻어 버리지만, 영혼은 천국 아니면 음부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당당히 예비된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고 부자와 나사로와 같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 부자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 쾌락을 누리다가 음부로 내려간 것을 우리가 기억하는 것입니다. 음부에 들어가서 영원히 불 속에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로 26절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죽어도 산다.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산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고 또 죽는 것은 육체가 죽고 영혼도 죽으면 정말로 불쌍한 처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죄와 허물을 사함 받는 복을 얻었고 병과 고통에서 치료받는 축복을 얻었고 그 다음 축복과 은혜를 받아서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 은혜를 받았고 영생복락을 얻은 것입니다. 오중복음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한 가지 복만 준 것이 아닙니다. 그냥 죽으셔서 고난당하시므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셔서 천국만 데려가는 그런 간단한 고난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여러분 우리 영혼을 구원할 뿐 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갈 동안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님이 함께 다 마련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인구원을 받자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는 것은 말할 필요 없거니와 범사에도 잘되고 강건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3절로 5절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한두 가지가 죄가 아닙니다. 모든 죄악을 다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독수리같이 새롭게 해주시니 예수 믿고 얼마나 생기를 얻어 좋은 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꼭 알아야 될 것은 예수님 십자가를 통해서 죄와 허물에서 놓여남을 받았다. 죄와 허물에서 청산을 받았다. 병 고침 받았다. 저주에서 해방되었다.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았다. 영원한 천국의 백성이 되었다. 그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죄 용서함 받았으면 되었지 다른 것은 무슨 소리 하느냐. 그런 소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우리가 남김없이 우리가 받아 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 누리느냐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교회 와서 말씀을 듣기도 하고 성경을 읽기도 해서 마음속에 굉장한 은혜를 받을 소원을 가지고 있으나 방법을 모릅니다. 죄 사함을 받고 거룩하게 되고 병 고침을 받고 건강하게 되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넘치게 복을 얻게 되고 죽게 되고 부활영생을 얻는 그 긍정적인 은총을 어떻게 받는지 알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으로 보고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리게 하는 것이 4차원의 영성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육신으로 사는 이 삶은 전부 3차원의 세계인 것입니다. 직선이나 평면이나 서로 연결해서 이렇게 세워서 4각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3차원인 것입니다. 눈에 안 보이는 것은 3차원을 뛰어넘어서 그 다음에 뭐가 있느냐. 바람과 같이 성령이 있으되 눈에 안 보입니다. 4차원은 보혜사 성령께서 4차원이 되시는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를 해서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는 것인데 어떻게 역사하느냐. 보혜사 성령은 영이시고 우리 3차원으로 사는 물질적은 것은 시간과 공간과 물질입니다. 물질과 영이 어떻게 합쳐지느냐. 그것은 성령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을 가질 때 생각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은 여러분의 생각을 통해서 여러분 가운데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꿈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현재 갖고 있지 않아도 마음속에 꿈을 그리고 그 꿈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를 통하여 성령께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역사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믿음에 대해 대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을 자기는 조금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 한번 봅시다. 조그마한 것... 어디에 있습니까? 몰라요. 어디에 있는지. 그러나 믿음이 있다고 합니다. 아니 믿음이 조그맣게 있고 믿음이 크고 그것을 모르고 어떻게 믿습니까? 그리고 ‘믿습니다. 믿습니다.’ 말은 하면서도 속에 ‘안 믿는다. 안 믿는다.’ 그러고 있으니 죽을 지경이지요. 아주 여러분 절대적인 믿음으로 믿을 수 있는 비밀이 있는데 좀 뜸을 떠서 드릴까요 그대로 오늘 드릴까요? 믿는다는 것은 여러분 속에 믿음이 홀로 자리를 잡고 앉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다는 것은 누구를 믿느냐. 누구가 앞에 딱 와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아버님을 믿는다. 어머님을 믿는다. 선생님을 믿는다. 나는 목사님을 믿는다. 우리 남편을 믿는다. 우리 아내를 믿는다. 누구를 믿는 것이지 그냥 믿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이 믿습니다. 믿습니다. 너 뭘 믿노? 몰라요. 그렇게 되면 안 되거든요. 아브라함도 하늘의 별들을 헤아려보고 네 자손이 저 별들처럼 많을 것이라.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보고 의롭다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것은 하나님이 그 일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먼저 알아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셔서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다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서 그 일을 해주실 것이냐 그것을 따져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일을 할 수도 있고 나를 사랑하셔서 그 일을 해주기를 원하시면 그러면 여러분 이 두 가지를 알았은즉 이제 믿든지 안 믿든지 여러분에게 달려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믿을 것이냐, 안 믿을 것이냐. 하나님이 능치 못하심이 없이 능력이 있고 그 하나님이 날 위해서 은혜를 베풀기 원하시니 믿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 하나님을 믿는 거예요. 그러면 주여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할렐루야~ 주여 감사합니다. 끝까지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구원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구원할 수 있는 힘이 있지요. 그런데 구원하기를 원하시는지 안 원하시는지 알아야 될 것인데 십자가에 매달려 못 박아 죽기까지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당하신 것은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힘도 있고 구원하기를 원하시고 그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자나 깨나 믿을 수 있어요.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이 하나님을 믿는 것. 그냥 믿으면 돼요. 그러면 하나님이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병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병을 하나님이 고칠 수 있느냐 없느냐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 같은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우리가 깨달아 알면 그 다음 하나님이 내 병을 고치기를 원하는지 안 원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조금 기도하고 묵상하고 보면 하나님이 병자들을 다 고친 것을 보고 내 병을 고치기를 기뻐하는 것을 알게 되면 그 다음엔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치료할 권세도 있고 치료하기를 원하시고 그것을 알면 감사하고 믿는 것입니다. 아주 믿음이 복잡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복잡하게 생각하면 안 돼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니까 너무 복잡해서 꼭 수학공식 푸는 것 같아서 어떻게 믿느냐 탄식을 하는데 여러분 쉽게 믿을 수 있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은 상대방이 있어야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나 혼자 아무것도 없이 허공을 바라보고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뭘 믿느냐. 몰라요. 그래도 믿습니다. 그것은 미친놈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것은 실상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부자가 될 것을 믿으면 그냥 믿어서 부자가 됩니까. 부자가 될 수 있는 사업을 하든지 상속을 주는 분이 있는 것을 알고 그분이 나를 사랑하사 나를 도와주기를 원하신다면 따라다니면서 ‘믿습니다. 믿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오냐 믿어라. 믿어라. 믿음이 실제적인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은혜를 우리가 얻기 위해서는 4차원의 영성을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이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큰 소리로 입으로 시인하면 그것이 창조적인 역사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먼저 보십시다. 우리가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하나님의 은혜를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잠언 4장 23절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을 지키는 것, 생각을 지켜서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 그렇게 하면 응답을 받을 수 있어요. 하나님은 마음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을 절대적으로 은혜와 축복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것을 우리 기도생활에 실천으로 옮겨지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되고 그 다음에는 내가 확실히 매일같이 바라봄의 법칙으로 꿈을 가져야 되고 그 다음 믿음, 반드시 나를 사랑하므로 내 축복을 주신다는 믿는 믿음, 제일 쉽습니다. 그 믿음을 마음속에 가지는 것 세상에 하나님처럼 능력 많으신 분이 어디에 계십니까? 그 하나님보다 나를 사랑해주는 분이 어디 있습니까? 그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는데 누가 못 믿으면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은 모두 다 ‘하나님! 내가 믿습니다.’ 하고 따라 붙으면 믿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지요? 늘 믿으십시오. 하나님 오래 농사가 잘될 줄 믿습니다. 장사가 잘될 줄 믿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할 줄 믿습니다. 착한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전부 믿을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하실 수가 있고 하나님이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믿으면 주님께서는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이게 정말 아버지와 아들과 세상에 살면서 이런 재미있는 삶을 살 수가 있을는지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를 의지하는 사람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바라보고 그 다음 믿음을 통해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우리 생애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히브리서 11장 6절 우리 다 같이 읽으십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게 바로 비결인 것입니다. 반드시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계시고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 그러면 믿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난 다음에는 창조적인 선포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루어진다고 믿었으면 잠언 18장 21절의 말씀처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하나님께서 고치실 것을 알았으면 우리는 혀로써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혈루병으로 고생하는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난 다음에 그가 혈루병에서 나음을 입을 수 있다고 마음에 믿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열두 해를 혈루병 앓은 여인이 자기가 나을 줄 알고 이제는 마음에 믿음을 가졌을 때 그는 끊임없이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이 뭐냐.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다. 나는 그의 옷자락에 손만 대면 낫는다. 아침이나 저녁이나 할 것 없이 나는 그의 옷자락에 손만 대면 낫는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집 앞을 지나갈 때 뛰어 나가서 옷자락에 손을 대니까 나아버리고 만 것입니다.
<결론>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이와 같은 상태가 국가, 사회, 가정, 개인의 심령에 있을 때 새롭게 되는 희망을 주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여러분 우리 스스로가 위대한 기적을 창조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내 영혼에 말 걸기를 게을리하지 말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영혼에게 말걸기」(Self Talk, Soul Talk)라는 책을 쓴 제니퍼 로스차일드는 망막염으로 15살 이후로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성경 연구 교재를 만들어 성경을 가르치는 강사이며 CCM가수이자 온라인잡지의 창설자로서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데, 그 비결은 바로 “자신과의 대화”덕분이라고 말합니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불행 앞에서, 그 동안 자신의 “생각”이라는 “벽장”속에 있던 부정적인 말들을 다 정리하고 긍정적인 말로 가득 채움으로써 다시 희망을 찾게 된 것입니다. 자기 마음의 벽장 속에 부정적인 말은 다 드러내고 긍정적인 생각을 집어 넣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과 대화를 하는데, 그 과정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의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내 주제에 무슨 좋은 일이 생기겠노!” “모두 다 날 싫어해!” “난 너무 멍청해!” 그렇게 자신을 비난하는 말을 아무 생각 없이 내뱉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무심코 내뱉은 말이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그 말을 합니까? 안 합니까? 한번 따라 해 보세요. 원하지 않으면 안 따라 해도 좋습니다. 내 주제에 무슨! 아이고 따라 하면 안 되는데. 여러분 주제에 좋은 것이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는데. 왜 따라 합니까? 모두 날 싫어해! 옳지! 잘합니다. 나는 너무 멍청해! 안 멍청하지요? 성공했습니다.
“누에”가 입에서 실을 뽑아 자기를 둘러싸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입술의 말로써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만들어갑니다. 긍정적인 말은 긍정적인 환경을 만들고, 부정적인 말은 부정적인 환경을 만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향해서나 남을 향해서도 늘 축복의 말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저번에는 여러분에게 말씀했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서 말을 하고 이웃과 교제하기 위해서 말을 하고 그 다음에는 내 운명과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내 자신에게 늘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자기에게 말을 한다는 것은 무의식중에 말을 하는 것이 많지만, 굉장히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토요일이 되면 무의식적으로 이런 말을 합니다. "용기야, 내일 성령님이 충만하게 되겠지? 그렇지? 기도 좀 더 해야 되겠다. 기도가 좀 모자란 것 같다. 너 말씀을 좀 더 읽어야 돼. 너무 잠 만자면 안 돼.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 너무 밥 많이 먹으면 안 돼. 적당히 먹어." 온갖 말을 자기보고 말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부정적인 말을 할 때가 굉장히 많아요. 요사이는 그 부정적인 말을 다 씻어내고 내 마음의 창고에 긍정적인 말만 충만하게 합니다. 여러분도 긍정적인 말을 충만하게 채워 놓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죄 사함도 주셨고 거룩함도 주셨고 성령도 주셨고 치료도 주셨고 축복도 주셨고 천당도 주셨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함도 주셨고 기쁨도 주셨고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도 주셨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도 주셨고 뭐 굉장히 많이 주셔서 여기 내 마음의 창고에 가득 채워 놓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자꾸 말씀하시라고요. 그러면 그것이 여러분의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여러분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귀하게 생각하고 말을 귀하게 하십시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주신 이 은혜를 여러분 계속해서 마음속에 말씀해서 붙잡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이 여러분의 것이 될 수 있도록 4차원의 영성을 따라 삽니다. 생각을 긍정적으로 하고 꿈을 꾸고 믿음은 내가 힘차게 믿고 내가 많이 믿을 수도 있고 적게 믿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내가 많이 믿으면 하나님의 능력을 더 크게 생각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더 크게 받아들이면 더 많이 믿을 수 있잖아요. 적게 믿든 많이 믿든 늘 믿음을 가지고서 살며 믿음이 있으면 믿음을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살았다. 나는 복을 받았다. 좋은 일이 일어난다. 건강해진다. 생명이 넘쳐난다. 말로써 여러분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굉장히 기뻐하시고 사랑하시고 여러분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성찬을 받아들이는 날인데 이것이 전부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는 은총인 것입니다. 여기 보십시오. 주님이 깨어진 몸을 상징적으로 떡으로 흘리신 피를 포도주로 상징적으로 주면서 이 살을 먹으면 나를 먹는 것이고 이 잔을 마시면 나의 피를 마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셨으니 여러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것을 다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은즉 그러므로 다시 믿음에 굳게 서서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오늘 여러분에게 큰 영광스러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성찬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난 다음에 믿으면 돼요. 하나님이 이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축복을 하는 것을 전에는 못 믿고 벌벌 떨었는데 이제는 믿어야 돼요. 못 믿을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하나님은 내 아버지고 하나님이 내게 복주시기를 원하시니까 믿으면 다 소유되는 것입니다. 다 같이 고개 숙여 한번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께서 오늘 우리를 불러 주셔서 믿음으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됨을 감사합니다. 주님이시여, 성령이 역사하셔서 굉장히 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을 누리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아멘.
/ 2014. 2. 2. 성찬주일설교
<본론>
1. 인간은 왜 절망적인 존재인가?
인간은 절망적인 존재라고 철학자들이 말을 합니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심판을 받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사는 사람치고 절망에 이르지 않는 병에 들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다 아버지의 혈통을 통해서 태어났고 그 아버지는 바로 아담인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6절로 17절에 “야훼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여기에서 말하는 죽음이란 영적인 죽음을 말합니다. 육체야 반드시 죽지요. 영원히 살 육체를 가진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영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되어 있는데 예수 없이 세상 가운데 헤매는 사람은 영적으로 죽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7절로 19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이야말로 좌절감과 절망을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말인 것입니다. 여기는 희망이 하나도 없어요. 우리가 저주를 받아서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소산을 먹고 가는 곳마다 가시와 엉겅퀴가 앞을 막는다는 것입니다. 얼굴에 땀이 마를 날이 없고 고생을 하고 괴로운 가운데서 먹을 것을 먹고 그리고도 오래 사느냐 하면 흙으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절망을 상속으로 받고 태어난 것입니다. 부모를 잘 만나서 많은 재산을 상속으로 받아서 사는 사람은 기쁘겠지요. 그러나 우리 인생들은 우리 첫 부모인 아담을 통하여 죄와 죽음의 상속을 받았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보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인 아담의 죄 때문에 상속을 죽음으로 받아들였거니와 우리 자신도 모두 다 죄를 지어서 우리 후손에게 죄의 상속을 넘겨주고 있습니다.
시편 51편 5절에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범죄하는 영혼은 죽으리라고 성경에 말했는데 죄의 값은 사망으로 모두 다 사망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작정한 것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구주로 보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사람의 모양으로 태어나게 하시고 사람의 죄를 다 대신 짊어지고 청산하도록 놀라운 계획을 주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2. 예수님의 고난과 대속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사람들을 보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라고 했는데 왜냐하면 죄와 허물로 짓눌린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인 것입니다. 죄가 없는 사람들이 없지요. 허물이 없는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그 다음 심신에 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병이 들어서 고난을 당하고 병에서 놓여날 날이 없는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주와 가난으로 말미암아 피땀 흘려도 먹고 살기가 힘들고 그 다음에는 죽음과 음부에 끌려 들어가서 영원히 영혼을 불꽃 가운데서 고생하게 만드는 이러한 인생을 예수님은 바라보고 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우리 목에다 감아 놓은 마귀와 대결해서 싸운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의 목에 매단 죽음에 이르는 짐을 예수님은 다 대신으로 받아서 청산해 버리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요 10:10)
도둑이 우리에게 이익을 갖다 준 사람이 있겠습니까? 마귀는 도둑이기 때문에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이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구주이기 때문에 양에게 생명을 주시되 풍성히 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기 때문에 항상 마귀가 우리에게 괴로움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신포도주를 십자가에서 받으시고 난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 19:30)
(테텔레스타이)다 이루었다. 무엇을 다 이루셨습니까? 우리를 죽이려는 마귀의 모든 모사와 모든 궤계를 주님께서 다 청산해 버리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우리를 위하여 놀라운 역사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는 제자들에게 밭을 가는 농부의 예를 들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자기의 멍에 밑에 던지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농부가 밭을 갈 때 망아지들이 올바르게 밭을 가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어미 소 멍에 밑에 넣어 놓습니다. 멍에가 이렇게 있으면 어미 소가 그 멍에를 걸머지면 그 뒤에 줄로 수레가 묶여 있어서 ‘이랴.’ 하면 수레를 끌고 가기도 하고 수레를... 그러니 논을 갈든지 짐을 짊어지고 가든지 어미 소는 굉장히 괴롭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목이 다 벗겨지고 괴로움을 당하는데 새끼소는 그 멍에 밑에 넣어주고 새끼는 짐은 어미 수레에 묶어 놓습니다. 그래서 이랴~ 이랴~ 하면 어미 소는 온 몸에 힘을 잔뜩 넣어가지고서 애를 쓰면서 당기는데 새끼는 보니까 아무 짐도 없고 무겁지도 않고 편안하거든. 그래서 가면서 에이~ 엄마, 괜히 과장하지 마라. 보니까 짐 가벼운데 무슨 땀을 뻘뻘 흘리느냐. 야 이 새끼야~ 너 새끼니까 아직 모르지만 네가 자라서 나처럼 되면 이 멍에 봐라. 내 목에 있는 멍에! 멍에가 내 목에 걸리니까 무거워지지. 지금은 네 멍에 목에 안 건다. 내가 다 대신 짊어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우리가 짊어질 모든 짐을 다 짊어진 것입니다. 하나도 남지 않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모든 것을 다 청산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로 30절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내 멍에는 쉽고 내가 걸머진 짐은 가볍다. 너희들에게 조금도 고통스럽지 않다. 오직 믿음으로 나오면 그 믿음으로 주님께서 짐을 대신 짊어져 주십니다. 대신 짊어져 주는 것 얼마나 가난과 고통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주님이 대신 짊어져 주시는 것을 체험하고 감사하는지 모릅니다.
3.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
성경에는 십자가에서 주님이 값없이 선물로 은혜를 주실 때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를 십자가를 통해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셨다. 새사람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얼마나 위대한 선물입니까? 여러분과 내가 옛사람, 허물에 묶인 사람, 병에 끌려가는 사람, 저주와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 죽음과 절망에 이른 사람, 이것 옛사람인 것입니다. 이 옛사람에서 우리 주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해방을 주셔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시고 다시는 죄의 멍에를 매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을 이 은혜가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인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의롭다 하심을 선물로 받았다. 이 의롭다는 것은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의의 옷을 입으면 하나님 앞에 부끄럼 없이 설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음력설을 쇘으니까 어른을 공경하고 세배를 갈 때 깨끗하고 좋은 옷을 입지 않습니까? 노동자 냄새가 나는 그러한 의복을 입고 세배를 가지 못합니다. 하물며 하나님 앞에 나갈 때 우리의 의로운 행동이란 썩은 냄새가 나서 그것을 입고는 못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씻어서 죄가 한 번도 지음이 없는 그 행동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구주로 모시면 아멘 하십시다. 그러면 주님이 여러분에게 의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 의라는 것은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평생에 죄를 짓지 않은 의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용서와 의의 은혜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고 거룩함과 성령충만의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의롭다 함을 얻을 뿐 아니라 우리 삶이 거룩하게 되는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1절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거룩하게 되는 것은 굉장히 힘이 듭니다. 여러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담배를 떼는데 죽을 고생을 합디다. 우리 어릴 때 보니까 일하는 머슴들, 또 서민 백성들 먹고사는데 유일한 취미가 담배 피우는 것이 그 취미입니다. 그런데 그때 보리밥 한 그릇도 못 먹고 한 3분의 2쯤 채워 놓은 것을 먹고 난 다음 하루 종일 중한 노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릴 때 5살, 6살 때 뭣도 모르고 노동하는 사람들 곁에서 보았는데 담배가 떨어지면 꼭 미친 사람같이 되어요. 손발을 벌벌 떨고, 그리고 난 다음에 담배 있느냐고 이웃 밭을 향해서 고함을 치면 있다고 하면 십리도 멀지 않다고 그 담배 요것만 한 것 하나 피려고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것만 한 담배를 피우고 난 다음에 얼마나 만족해하는지 저는 일찌감치 담배 안 피우는 부모 밑에서 배웠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몰래 담배 피웠을지 몰라요. 나는 그런데 그 시아버님이 자기 맏며느리 데리고 왔는데 며느리에게 잘해주는 것 지금도 눈에 환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산 밑으로 내려가서 물을 퍼 올려 오는데 옛날에는 며느리가 그 물을 다 떠서 머리에 이고서 올라오거든요. 물이 자꾸 흐르니까. 그런데 그 시아버지가 논농사, 밭농사를 힘들게 하고 난 다음에 며느리 물 길어 올 때면 당연히 집으로 와서 그 물을 길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 길어 주고 난 다음에 저녁에 반드시 부부간에 말다툼하는 것을 듣습니다. 그것은 뭐냐면 시어머니가 며느리는 얼마나 좋기에 물 길어 주는데 나는 왜 안 해 주노? 그래서 그때는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그 시아버지가 세상을 뜨고 난 다음에 제단을 만들어 놓고 며느리가 매일같이 담뱃대에 불을 붙여서 시아버지 영정 앞에 놓았는데 하루는 온 집안이 떠나갈 듯이 통곡을 하고 울고 굉장합니다. 동리 사람들이 다 와보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참 효성스러운 며느리라고 하는데 왜냐하면 담뱃대에 담뱃불을 붙여서 시아버지 영전에 갖다 놓았다가 어디 갔다 오니까 담뱃대가 떨어졌어요. 아버님이 오셔서 한 대 피우고 가셨다. 내가 아버님 오신 것을 기다려서 만나지 못했으니 큰 불효를 했다고. 그렇게 슬피 울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죽으면 담배 피우러 오는가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런 것이 다 허물인 것입니다. 아버지를 우상화하고 죽은 영이 들어올 것이라고 해서 담뱃불을 피우고 그렇게 하는 것은 우상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인 것입니다. 이런 것도 주님께서 다 씻어서 거룩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 앞에서 더러워진 것을 다 씻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혜를 주시는 것이므로 거룩함과 성령충만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치료와 건강의 은혜를 주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한번 같이 읽으십시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우리가 병들어 있을 때 하나님께 병 고침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병 고침을 주시는데 어떻게 주시느냐. 대개 입술로 고백할 때 고백을 통해서 병 고침을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를 받고 내가 나았다고 믿었으면 시시각각으로 그것을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는 나음을 입었다. 자기 이름을 자기가 부르면서 "용기야, 너 나음을 입었다. 걱정하지 말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다." 그러면 그 말 자체가 치료의 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잖습니까?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았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말씀 속에 들어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자꾸 증거하고 증거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강력하게 되어서 병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도 또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을 우리에게 주시고 형통하게 해주신다. 형통이란 것 굉장히 좋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일이 잘 풀려 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를 믿고 의지하고 섬기면 주님이 우리의 삶을 형통하게 하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렇기 떄문에 우리가 큰소리하고 살 수 있는 것은 우리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의 어느 나라 사람보다 예수님을 더 충성스럽게 믿고 잘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희생을 자원하고 나온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형통하게 해주실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형통하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통하심이 여러분과 같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마음속에 나는 못산다. 안 된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는 형통한 사람이다.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셔서 저주를 다 청산하셨으므로 나는 형통한 사람이다. 그렇게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 3:13~14)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복주고 복주며 장성케 하며 장성케 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그 아브라함의 복을 예수를 통해서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복을 주시므로 어느 곳에 가든지 형통하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다는 것이 형통으로 나타나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 여러분이 되십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러한 삶을 살기를 원하고 그러한 삶을 통해서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이웃에 축복을 나눠주기를 원합니다. 어제 내가 텔레비를 보다가 교회 채널에 어떤 목사님이 나와서 나에게 한 펀치 먹이는 것을 들었습니다. 뭐냐면 요사이 목사들이 하나님은 복을 주신다고 성도들을 꾀어서 성도들을 게으르게 만들고 잘못된 믿음으로 들어가게 하는데 그 사람이 영향력이 너무 심해서 젊은 목사들이 다 따라가고 있는데 이를 중지시켜야 한다고... 그래서 제가 앉아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중지 못 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에 하나님이 말씀하기를 예수께서 저주를 다 짊어져서 아브라함의 축복을 대신 주셨다고 하셨으니 우리는 예수 믿고 다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은 자라 하나님이 주신 것 빼앗을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예수 믿는 우리 대한민국 백성들은 점점 더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더 많이 전도하고 더 많은 선교사를 보낼 수가 있습니다. 박수를 치니 좋은데 나도 한번 치겠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십자가를 통해서 부활과 영생천국의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육체는 땅에 파묻어 버리지만, 영혼은 천국 아니면 음부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당당히 예비된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고 부자와 나사로와 같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 부자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 쾌락을 누리다가 음부로 내려간 것을 우리가 기억하는 것입니다. 음부에 들어가서 영원히 불 속에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로 26절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죽어도 산다.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산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고 또 죽는 것은 육체가 죽고 영혼도 죽으면 정말로 불쌍한 처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죄와 허물을 사함 받는 복을 얻었고 병과 고통에서 치료받는 축복을 얻었고 그 다음 축복과 은혜를 받아서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 은혜를 받았고 영생복락을 얻은 것입니다. 오중복음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한 가지 복만 준 것이 아닙니다. 그냥 죽으셔서 고난당하시므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셔서 천국만 데려가는 그런 간단한 고난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여러분 우리 영혼을 구원할 뿐 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갈 동안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님이 함께 다 마련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인구원을 받자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는 것은 말할 필요 없거니와 범사에도 잘되고 강건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3절로 5절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한두 가지가 죄가 아닙니다. 모든 죄악을 다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독수리같이 새롭게 해주시니 예수 믿고 얼마나 생기를 얻어 좋은 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꼭 알아야 될 것은 예수님 십자가를 통해서 죄와 허물에서 놓여남을 받았다. 죄와 허물에서 청산을 받았다. 병 고침 받았다. 저주에서 해방되었다.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았다. 영원한 천국의 백성이 되었다. 그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죄 용서함 받았으면 되었지 다른 것은 무슨 소리 하느냐. 그런 소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우리가 남김없이 우리가 받아 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 누리느냐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교회 와서 말씀을 듣기도 하고 성경을 읽기도 해서 마음속에 굉장한 은혜를 받을 소원을 가지고 있으나 방법을 모릅니다. 죄 사함을 받고 거룩하게 되고 병 고침을 받고 건강하게 되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넘치게 복을 얻게 되고 죽게 되고 부활영생을 얻는 그 긍정적인 은총을 어떻게 받는지 알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으로 보고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리게 하는 것이 4차원의 영성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육신으로 사는 이 삶은 전부 3차원의 세계인 것입니다. 직선이나 평면이나 서로 연결해서 이렇게 세워서 4각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3차원인 것입니다. 눈에 안 보이는 것은 3차원을 뛰어넘어서 그 다음에 뭐가 있느냐. 바람과 같이 성령이 있으되 눈에 안 보입니다. 4차원은 보혜사 성령께서 4차원이 되시는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를 해서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는 것인데 어떻게 역사하느냐. 보혜사 성령은 영이시고 우리 3차원으로 사는 물질적은 것은 시간과 공간과 물질입니다. 물질과 영이 어떻게 합쳐지느냐. 그것은 성령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을 가질 때 생각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은 여러분의 생각을 통해서 여러분 가운데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꿈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현재 갖고 있지 않아도 마음속에 꿈을 그리고 그 꿈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를 통하여 성령께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역사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믿음에 대해 대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을 자기는 조금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 한번 봅시다. 조그마한 것... 어디에 있습니까? 몰라요. 어디에 있는지. 그러나 믿음이 있다고 합니다. 아니 믿음이 조그맣게 있고 믿음이 크고 그것을 모르고 어떻게 믿습니까? 그리고 ‘믿습니다. 믿습니다.’ 말은 하면서도 속에 ‘안 믿는다. 안 믿는다.’ 그러고 있으니 죽을 지경이지요. 아주 여러분 절대적인 믿음으로 믿을 수 있는 비밀이 있는데 좀 뜸을 떠서 드릴까요 그대로 오늘 드릴까요? 믿는다는 것은 여러분 속에 믿음이 홀로 자리를 잡고 앉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다는 것은 누구를 믿느냐. 누구가 앞에 딱 와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아버님을 믿는다. 어머님을 믿는다. 선생님을 믿는다. 나는 목사님을 믿는다. 우리 남편을 믿는다. 우리 아내를 믿는다. 누구를 믿는 것이지 그냥 믿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이 믿습니다. 믿습니다. 너 뭘 믿노? 몰라요. 그렇게 되면 안 되거든요. 아브라함도 하늘의 별들을 헤아려보고 네 자손이 저 별들처럼 많을 것이라.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보고 의롭다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것은 하나님이 그 일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먼저 알아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셔서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다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서 그 일을 해주실 것이냐 그것을 따져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일을 할 수도 있고 나를 사랑하셔서 그 일을 해주기를 원하시면 그러면 여러분 이 두 가지를 알았은즉 이제 믿든지 안 믿든지 여러분에게 달려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믿을 것이냐, 안 믿을 것이냐. 하나님이 능치 못하심이 없이 능력이 있고 그 하나님이 날 위해서 은혜를 베풀기 원하시니 믿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 하나님을 믿는 거예요. 그러면 주여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할렐루야~ 주여 감사합니다. 끝까지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구원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구원할 수 있는 힘이 있지요. 그런데 구원하기를 원하시는지 안 원하시는지 알아야 될 것인데 십자가에 매달려 못 박아 죽기까지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당하신 것은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힘도 있고 구원하기를 원하시고 그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자나 깨나 믿을 수 있어요.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이 하나님을 믿는 것. 그냥 믿으면 돼요. 그러면 하나님이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병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병을 하나님이 고칠 수 있느냐 없느냐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 같은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우리가 깨달아 알면 그 다음 하나님이 내 병을 고치기를 원하는지 안 원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조금 기도하고 묵상하고 보면 하나님이 병자들을 다 고친 것을 보고 내 병을 고치기를 기뻐하는 것을 알게 되면 그 다음엔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치료할 권세도 있고 치료하기를 원하시고 그것을 알면 감사하고 믿는 것입니다. 아주 믿음이 복잡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복잡하게 생각하면 안 돼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니까 너무 복잡해서 꼭 수학공식 푸는 것 같아서 어떻게 믿느냐 탄식을 하는데 여러분 쉽게 믿을 수 있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은 상대방이 있어야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나 혼자 아무것도 없이 허공을 바라보고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뭘 믿느냐. 몰라요. 그래도 믿습니다. 그것은 미친놈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것은 실상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부자가 될 것을 믿으면 그냥 믿어서 부자가 됩니까. 부자가 될 수 있는 사업을 하든지 상속을 주는 분이 있는 것을 알고 그분이 나를 사랑하사 나를 도와주기를 원하신다면 따라다니면서 ‘믿습니다. 믿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오냐 믿어라. 믿어라. 믿음이 실제적인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은혜를 우리가 얻기 위해서는 4차원의 영성을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이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큰 소리로 입으로 시인하면 그것이 창조적인 역사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먼저 보십시다. 우리가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하나님의 은혜를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잠언 4장 23절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을 지키는 것, 생각을 지켜서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 그렇게 하면 응답을 받을 수 있어요. 하나님은 마음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을 절대적으로 은혜와 축복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것을 우리 기도생활에 실천으로 옮겨지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되고 그 다음에는 내가 확실히 매일같이 바라봄의 법칙으로 꿈을 가져야 되고 그 다음 믿음, 반드시 나를 사랑하므로 내 축복을 주신다는 믿는 믿음, 제일 쉽습니다. 그 믿음을 마음속에 가지는 것 세상에 하나님처럼 능력 많으신 분이 어디에 계십니까? 그 하나님보다 나를 사랑해주는 분이 어디 있습니까? 그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는데 누가 못 믿으면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은 모두 다 ‘하나님! 내가 믿습니다.’ 하고 따라 붙으면 믿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지요? 늘 믿으십시오. 하나님 오래 농사가 잘될 줄 믿습니다. 장사가 잘될 줄 믿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할 줄 믿습니다. 착한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전부 믿을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하실 수가 있고 하나님이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믿으면 주님께서는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이게 정말 아버지와 아들과 세상에 살면서 이런 재미있는 삶을 살 수가 있을는지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를 의지하는 사람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바라보고 그 다음 믿음을 통해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우리 생애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히브리서 11장 6절 우리 다 같이 읽으십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게 바로 비결인 것입니다. 반드시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계시고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 그러면 믿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난 다음에는 창조적인 선포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루어진다고 믿었으면 잠언 18장 21절의 말씀처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하나님께서 고치실 것을 알았으면 우리는 혀로써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혈루병으로 고생하는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난 다음에 그가 혈루병에서 나음을 입을 수 있다고 마음에 믿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열두 해를 혈루병 앓은 여인이 자기가 나을 줄 알고 이제는 마음에 믿음을 가졌을 때 그는 끊임없이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이 뭐냐.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다. 나는 그의 옷자락에 손만 대면 낫는다. 아침이나 저녁이나 할 것 없이 나는 그의 옷자락에 손만 대면 낫는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집 앞을 지나갈 때 뛰어 나가서 옷자락에 손을 대니까 나아버리고 만 것입니다.
<결론>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이와 같은 상태가 국가, 사회, 가정, 개인의 심령에 있을 때 새롭게 되는 희망을 주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여러분 우리 스스로가 위대한 기적을 창조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내 영혼에 말 걸기를 게을리하지 말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영혼에게 말걸기」(Self Talk, Soul Talk)라는 책을 쓴 제니퍼 로스차일드는 망막염으로 15살 이후로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성경 연구 교재를 만들어 성경을 가르치는 강사이며 CCM가수이자 온라인잡지의 창설자로서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데, 그 비결은 바로 “자신과의 대화”덕분이라고 말합니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불행 앞에서, 그 동안 자신의 “생각”이라는 “벽장”속에 있던 부정적인 말들을 다 정리하고 긍정적인 말로 가득 채움으로써 다시 희망을 찾게 된 것입니다. 자기 마음의 벽장 속에 부정적인 말은 다 드러내고 긍정적인 생각을 집어 넣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과 대화를 하는데, 그 과정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의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내 주제에 무슨 좋은 일이 생기겠노!” “모두 다 날 싫어해!” “난 너무 멍청해!” 그렇게 자신을 비난하는 말을 아무 생각 없이 내뱉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무심코 내뱉은 말이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그 말을 합니까? 안 합니까? 한번 따라 해 보세요. 원하지 않으면 안 따라 해도 좋습니다. 내 주제에 무슨! 아이고 따라 하면 안 되는데. 여러분 주제에 좋은 것이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는데. 왜 따라 합니까? 모두 날 싫어해! 옳지! 잘합니다. 나는 너무 멍청해! 안 멍청하지요? 성공했습니다.
“누에”가 입에서 실을 뽑아 자기를 둘러싸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입술의 말로써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만들어갑니다. 긍정적인 말은 긍정적인 환경을 만들고, 부정적인 말은 부정적인 환경을 만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향해서나 남을 향해서도 늘 축복의 말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저번에는 여러분에게 말씀했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서 말을 하고 이웃과 교제하기 위해서 말을 하고 그 다음에는 내 운명과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내 자신에게 늘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자기에게 말을 한다는 것은 무의식중에 말을 하는 것이 많지만, 굉장히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토요일이 되면 무의식적으로 이런 말을 합니다. "용기야, 내일 성령님이 충만하게 되겠지? 그렇지? 기도 좀 더 해야 되겠다. 기도가 좀 모자란 것 같다. 너 말씀을 좀 더 읽어야 돼. 너무 잠 만자면 안 돼.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 너무 밥 많이 먹으면 안 돼. 적당히 먹어." 온갖 말을 자기보고 말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부정적인 말을 할 때가 굉장히 많아요. 요사이는 그 부정적인 말을 다 씻어내고 내 마음의 창고에 긍정적인 말만 충만하게 합니다. 여러분도 긍정적인 말을 충만하게 채워 놓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죄 사함도 주셨고 거룩함도 주셨고 성령도 주셨고 치료도 주셨고 축복도 주셨고 천당도 주셨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함도 주셨고 기쁨도 주셨고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도 주셨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도 주셨고 뭐 굉장히 많이 주셔서 여기 내 마음의 창고에 가득 채워 놓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자꾸 말씀하시라고요. 그러면 그것이 여러분의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여러분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귀하게 생각하고 말을 귀하게 하십시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주신 이 은혜를 여러분 계속해서 마음속에 말씀해서 붙잡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이 여러분의 것이 될 수 있도록 4차원의 영성을 따라 삽니다. 생각을 긍정적으로 하고 꿈을 꾸고 믿음은 내가 힘차게 믿고 내가 많이 믿을 수도 있고 적게 믿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내가 많이 믿으면 하나님의 능력을 더 크게 생각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더 크게 받아들이면 더 많이 믿을 수 있잖아요. 적게 믿든 많이 믿든 늘 믿음을 가지고서 살며 믿음이 있으면 믿음을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살았다. 나는 복을 받았다. 좋은 일이 일어난다. 건강해진다. 생명이 넘쳐난다. 말로써 여러분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굉장히 기뻐하시고 사랑하시고 여러분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성찬을 받아들이는 날인데 이것이 전부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는 은총인 것입니다. 여기 보십시오. 주님이 깨어진 몸을 상징적으로 떡으로 흘리신 피를 포도주로 상징적으로 주면서 이 살을 먹으면 나를 먹는 것이고 이 잔을 마시면 나의 피를 마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셨으니 여러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것을 다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은즉 그러므로 다시 믿음에 굳게 서서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오늘 여러분에게 큰 영광스러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성찬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난 다음에 믿으면 돼요. 하나님이 이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축복을 하는 것을 전에는 못 믿고 벌벌 떨었는데 이제는 믿어야 돼요. 못 믿을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하나님은 내 아버지고 하나님이 내게 복주시기를 원하시니까 믿으면 다 소유되는 것입니다. 다 같이 고개 숙여 한번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께서 오늘 우리를 불러 주셔서 믿음으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됨을 감사합니다. 주님이시여, 성령이 역사하셔서 굉장히 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을 누리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아멘.
/ 2014. 2. 2. 성찬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