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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배를 품은 사람들 / 고후 4장 7~11

    • 조용기
      *.206.231.102
    • 2011.07.23 - 23:16 2010.03.27 - 03:34  3033


할렐루야~
저는 그날 가보고 장애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 그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지 하나님 앞에서 불평하지 말아야 되겠다고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위를 쳐다보면 불평을 늘하겠지만 밑을 내려다보면 불평하지 않고 살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지백체가 온전한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하고 찬송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온전한 사지백체를 주셨으니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축복을 온전히 주실 줄로 믿습니다.

<서론>
오늘 저는 “보배를 품은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고해라고 말합니다. 고통의 바다라고 말합니다. 행복 속에도 슬픔이 있고 웃음 속에도 눈물이 있습니다. 숨기고 싶은 비밀한 죄책이 있고 돈, 지위, 명예, 권력의 화려함 속에서도 갑자기 엄습하는 허무와 무의미의 감정이 마음 속에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아침에 일어나고 일터에서 일하고 점심 먹고 또 일하고 저녁에 돌아오고 반복되는 이 생활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 지구상에 사는 사람은 모두 죽음의 그림자 밑에서 몸서리칩니다. 누구도 다 죽어야 됩니다. 사람이 한번 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고 난 다음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젊을 때는 몸에 병이 들고 아프면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지만 나이를 먹으면 24시간 죽음이 그림자처럼 따라 다녀요. 언제 죽을지 몰라요. 인류 역사상 가장 호화롭게 살았던 솔로몬도 전도서 1장 2절로 11절에 이렇게 탄식을 했습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솔로몬같이 휘황찬란하게 산 사람도 그의 삶 속에 이러한 허무와 무의미의 감정이 꽉 찼습니다. 결국은 호화찬란하게 살았다는 것은 꿈과 같은 일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많은 고난을 겪고 난 다음 죽었다는 그 기억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을 섬기는 가치 있는 목표가 없이는 어떻게 사는지 알지를 못합니다. 날이 갈수록 희망 없이 인생이 어떻게 삽니까?

<본론>
1. 예수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가?
오늘날 이 세상에 예수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두 다 지구라는 타락하고 저주받은 땅에서 살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저주받은 땅입니다.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우리 삶에 장애물 천지인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7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평생에 수고해야 소산을 먹는다. 여러분 어떻게 사십니까? 허득허득 살아온 것을 보면 수고하고 인생을 살아온 것입니다. 편안하게 롤러스케이트 타고 오지는 않았습니다. 타락하고 저주 받은 땅에서 고난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조차도 육신을 입고 이처럼 타락한 세상에 오셔서 고난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조차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실 때 당신 자신을 고난의 한가운데 풍덩 빠뜨리도록 던지셨던 것입니다. 태어나서도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셨습니다. 목수의 집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심한 중노동을 했고 그 다음에는 노숙을 하면서 제자들 데리고 33년 동안 이 땅에 살았습니다. 왜 예수님이 이 저주받은 땅에 왔습니까? 온 땅이 이렇게 저주받았는데 무엇 때문에 왔나요? 예수님 오기 6백 내지 7백년 전에 이사야는 이 저주받은 땅에 희망을 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저주받은 땅에 희망을 어디서 찾을 것이냐. 예수님께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단단히 들어보세요. 놀라운 예언입니다.
이사야 53장 1절로 8절인데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야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결국 이 세상의 희망은 우리 위해서 십자가에 죽어주신 예수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이 우리에게 희망이 되지 않습니다. 오늘 있다 내일 없어질 세상의 부귀 영화가 희망이 안됩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희망이 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입니다. 왜 예수님이 그만한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예수님이 쉽게 우리의 구주가 된 것이 아니지 않아요. 십자가에 못박혀 고난당한 모습 여기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저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라 저가 상함은 우리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 평화를 누리고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가 다 어린양 같이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우리 무리의 죄악을 저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쳐다보면 우리 마음에 변화가 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은 남편을 다섯이나 갈아 제키고 여섯 번째 남자하고 살면서도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절망적이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만나자마자 순식간에 변화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시간이 걸리지 않았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인생이 되고 만 것입니다. 예수를 만난 개인도 변화되고 예수를 만난 가정도 변화되는 예수를 만난 나라도 변화되는 것입니다. 역사를 통해서 보게 될 때 그리스도를 만나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게 되지 않은 개인과 가정과 나라가 없습니다. 이 세상 교육을 잘 받을 수 있으면 좋지요. 그러나 이 세상에 교육을 못 받은 사람도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세계를 변화시켰습니다. 나라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미국의 성형외과 의사인 맥스웰 몰츠(Maxwell Maltz, M.D.)는 수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성형수술을 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우선, 사람들은 성형수술로 자신의 외모가 아름답게 되면 성격이나 인격도 갑작스럽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평소 콤플렉스로 여겼던 부분이 고쳐지면 그로 인해 생겼던 자기 비하, 자기 혐오, 불만, 두려움 등도 없어져서 자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성격이 밝아진다는 것입니다. 얼굴을 성형수술해서 좋아지면 성격이 밝아진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사건은 아무리 성형수술이 잘되어서 얼굴이 몰라볼 정도로 아름다워져도 마음은 달라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감정은 달라지더라도 근본적인 마음은 나쁜 사람은 여전히 나쁘고 악한 사람은 여전히 악하고 거짓말쟁이는 성형수술을 해놓아도 여전히 거짓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인생의 변화는 마음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을 성형수술 하지 말고, 마음을 성형수술 하라”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외형이 아무리 아름다워져도 그 안에 예수님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우리는 오직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많은 주의 종들이 예수님을 만나지 않고 주의 종이 되어 있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교회왔다갔다 하면서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종교적으로 왔다갔다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소문만 듣고 왔다갔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예수님을 만나야 돼요.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무관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생이 달라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 요한복음 3장 5절에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천국시민권을 얻게 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44절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그리스도의 역사는 그와 만나는 사람을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안 믿는 사람과 뭐가 다르냐. 안 믿는 사람은 종교는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예수님은 못 만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예수를 만난 사람이요, 예수님을 마음 속에 모시고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친구 두 사람이 만나서 참 친했기 때문에 같이 늘 술 먹고 도박하고 놀러 다니는데 얼마 있다가 한 친구가 술도 먹지 않고 도박도 안하고 놀러도 안갑니다. 그래서 다른 친구가 “야 너 어떻게 되었니? 병들었지 않느냐? 너 잘못됐지 않느냐? 왜 이렇게 변했느냐?” “내가 변한 것이 아니야. 주인이 달라졌어.” “무슨 주인이 달라졌노?” “전에는 세상과 마귀가 내 마음 속 주인이었는데 세상과 마귀가 하자는데로 따라 했는데 내가 교회가서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이 예수님을 마음 속에 새로운 주인으로 모셔 들여서 아버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가슴에 모셔 들여서 이제 내 마음 속에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이 주인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 좋아하는 일을 하네. 내가 술을 안 먹으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 좋아해. 우리 주인이 좋아해. 도박하지 않고 놀러 안다니면 내 속에 주인이 좋아해. 주인이 바뀌었어.” 그러자 그 안 믿는 친구가 이해를 못합니다. “주인이 바뀌다니. 내내 너는 너인데 무슨 주인이냐?” “겉사람은 안변했어도 속사람은 변했네. 주인이 달라졌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수양과 도덕을 닦아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일어서나 앉으나 달라진 주인이 우리를 끌고 가요. 그러므로 주인이 달라졌기 때문에 주인과 같이 있으면 주인 성격을 닮게 돼요. 우리의 힘과 능으로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 수가 없어요. 우리 속에 계신 주인이 그렇게 살도록 끌어 주시지. 그러므로 믿는 자와 안 믿는 자가 뭐가 다르냐. 믿는 자는 마음 속에 주인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 되어 계시고 안믿는 사람은 그 주인이 세상과 마귀가 주인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의식과 형식이 다르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2. 믿는 자의 삶
그런데 우리 믿는 자의 삶은 어디에 다가 힘을 주어야 되는 것입니까? 성경에는 보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와 함께 죽고 장사지내고 함께 살았다는 말을 자꾸 합니다.
로마서 8장 36절에도 보면은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는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우리 믿는다는 것은 법적인 의미가 그리스도와 합하여 죽는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옛사람은 죽어 버렸어요. 그리스도와 함께... 에이~ 예수님이 죽었지 내가 어디 죽었노?
여러분 김연아 이번에 스케이팅을 한번 보십시다. 김연아가 성공을 했지 우리가 성공은 안했지요. 그래도 모두 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가지고서 점프할 때마다 넘어질까 싶어서... 그가 성공을 하면 우리가 박수를 치고 고함을 쳤습니다. 온 우리 국민이 김연아와 하나가 되었어요. 내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그래요. 내가 한국 사람만 아니면 안그래요. 보통 때는 아웅다웅 싸우던 사람들이 스케이트 보는 한 마음으로 박수를 치고 동동 굴러요. 영어로 말하면 ‘Idenfificaion’ 동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여러분은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옛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하나님의 아들 어떻게 믿으라는 말입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이란 예수님 통해서 우리는 옛 사람이 죽었고 장사지내고 말았다고 믿는 것입니다. 나는 죽었다. 나는 장사지내고 말았다. 그러므로 내 옛사람에 대해서 하나님도 왈가왈부 안하시고 마귀도 왈가왈부 안한다. 죽어 버렸는데요. 죽고 장사지낸 바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해서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산다.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믿음으로 신앙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지 행위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했는데 이 진지를 알고 우리 자유를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속한 내 육체는 내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쳐다볼 때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서 죽어버리고 만것입니다. 그리고 새사람이 되어 자라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깨달음을 늘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난 옛사람이 죽었다. 그러므로 나는 옛사람으로써 세상에 살지 않는다. 옛사람의 죄, 옛 불의와 추악, 옛 질병, 옛 저주, 옛 죽음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되었다. 이 깨달음이 빛으로 온 사람은 그 깨달음 속에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하여 이미 죽고 장사지낸 바 되고 용서받고 의로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거룩하고 성결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같이 채찍에 맞으므로 병을 다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저주를 다 벗어버린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고 이미 부활해 버린 것입니다. 그 빛을 마음 속에 늘 비추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에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하나님이 이 진리를 깨닫는 빛을 비춰 주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여하간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도록 축복을 받아 버린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보고 깨달아야 됩니다. 우리 신앙은 십자가에서 시작해서 십자가에서 끝납니다. 예수님이 그냥 십자가에 벌거벗고 매달린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것입니다. 죄짓고 추악하고 병들고 저주받고 가난하고 낭패와 실망당하고 죽고 지옥가는 그 못난 내가 주께 매달려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새로운 이미지를 마음 속에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빛이 우리 마음 속에 비친 이상 항상 이 빛을 바라보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옛 어둠의 세계로 돌아가서 자기에 대해서 저주와 절망을 가지고 낙심하고 살면 안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장 3절에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하나님이 영광의 광채시오 본체의 형상인 그리스도가 여러분과 나를 위한 재물이 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22절에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이런 하나님의 큰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보증으로 성령이 마음 속에 인치심을 받았다. 성령이 도장을 찍어주셨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나는 성령의 도장 받았구나. 마귀 앞에 설때도 아~ 성령의 도장을 받았네. 여러분 자신이 도장 없는데요? 나는 도장 받은 적이 없어요. 그것은 빛을 깨닫지 못하면 그런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육신의 여러분 자신과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여러분 자신을 분명히 알고 살아야 예수 믿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을 긍정적으로 깨달아 알고 그것을 마음 속에 꿈꾸어보고 그것을 믿고 그것을 입으로 시인하면 그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도 그래요. 믿음도 나는 믿음이 적습니다. 그런 소리하지 말아야 돼요. 주님께서는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내 믿음이니까 주님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믿느냐. 믿음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주님이 네 믿음대로 된다고 해요. 물건을 사는데 너 돈 있지 않느냐? 네 돈으로 사라. 내가 도와줄 필요 없다 그 말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으려고 하면 믿고 안 믿으려고 하면 안믿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가 물에 빠졌을 때 주님께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했느냐. 의심을 하고 믿음이 적은 것은 베드로였습니다. 스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께 나와서 개들도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데 이방인이라도 주님이 고쳐주신다고 믿는다고 하니까. 주님이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여러분의 믿음이 여러분의 인생을 이끌고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안 믿을 수도 있고 적게 믿을 수도 있고 크게 믿을 수도 있고 죽도록 믿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자꾸 자라게 해야 돼요. 그 믿음있는 사람하고 같이 지내면 이야기를 들어서 용기를 얻지요. 내가 또 체험을 하면 체험을 할수록 믿음이 점점 강해져서 나중에는 믿음의 용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깨달음을 갖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신 지식을 가지고 주의 성령의 도움으로 새 사람 되는 꿈을 꾸며 마음에 능력인 믿음을 가지고 일어나서 믿고 입술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입술의 말이 얼마나 힘이 있는지 압니까? 우리 입의 말이 우리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혀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도 여러분께서 관심을 가지고 선택적으로 해야지 무지막지하게 말을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제가 50년을 그렇게 설교했지만 우리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아멘! 하시고 난 다음 교회 밖에 나가면 다 잊어 버려요. 건망증이 얼마나 심한지 몰라요. 잊어버리지 말고 여러분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항상 주의 말씀을 따라서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말하십시오. 아브라함이 자식도 없는데 아브라함, 많은 민족의 조상, 사래를 사라, 많은 자식의 여주. 자식도 없는데 이미 말을 바꾼 것처럼 여러분도 항상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십시오. 그러면 그 길로 하나님의 성령이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꿈꾸고 꿈은 다 꿀수 있잖아요. 그리고 내가 믿기로 결심을 하고 그것은 우리 의지에 달렸으니까 믿기로 결심을 하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말하고 그러면 초자연적인 능력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바로 이와같이 예수님의 대속을 깨닫고 그 안에서 들어가서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님이 우리의 대속물이 되셨으니 그 대속물을 우리가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9절에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았습니다. 우리 위해서 죽음을 맛보았습니다. 그 열매가 우리 생활 속에 나타나야지요. 아무 목적도 없이 주님이 십자가에 죽은 것은 아니니까. 주님이 죽으신 열매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마음에 비춰져서 깨달음을 얻어서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H. Taylor) 가 중국 내지에서 개척하며 선교하고 있을 때 한 청년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신자가 되는데 몇 년이 걸립니까?” 테일러 선교사는 그 청년에게 “램프의 심지에 얼마 동안 불을 붙여야 빛을 발합니까?” 이렇게 물었습니다. 청년은 “그야 심지에 불이 붙는 순간부터 빛을 내지요” 테일러 선교사는 청년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구원하셨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새로운 삶을 얻은 그 영혼에서 빛이 타오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몇십년 걸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내 구주라고 깨닫는 그 순간에 빛이 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John Wesley) 목사님은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거듭남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루터의 로마서 강해를 듣다가 성령을 체험하고 그의 신앙과 사역은 결정적인 전기를 맞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순간에 즉시 얻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우리들은 점점 빛을 받아서 그 구원의 의미를 알게 되고 그 구원이 우리에게 주는 축복을 점점 더 크게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예수 믿고 턱걸이로 천당가기 위해서 구원받은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지도를 받아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받은 것처럼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엄청난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깨달은 사람은 그것을 얻고 깨닫지 못한 사람은 이야기만 듣고 그냥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깨닫고 그것을 꿈꾸고 믿고 말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깨닫는 것 참 중요합니다. 그 교회와서 성경공부하고 하나님 말씀을 들어서 깨닫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마음에 깨달으면 깨달는 데로 내가 그렇게 변한다고 상상할 수 있고 꿈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에 믿을 수 있습니다. 나는 변화되고 나는 저렇게 된다. 그리고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말할 수 있지요. 나는 튼튼합니다. 나는 건강합니다. 나는 이쁩니다. 나는 사랑받습니다. 나는 성공합니다.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나는 못났어요. 나는 미움받아요. 환영받지 못해요. 나는 실패할 거에요. 나 같은 사람은 세상에 살 가치도 없어요. 그렇게 말을 하면 그 사람 팔자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기 앞날이 밝아질 것을 기대하면 큰일이지요. 그렇게 말하면 마귀가 그 말을 받아서 박수치고 춤을 추고 야단법석을 할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은 예수를 믿자마자 구원을 받지만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 여러분은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넓은 세계로 들어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이미 성경에 주어진 것입니다. 그것을 소유할 수 있는 길이 생각으로 깨닫고 마음으로 꿈꾸고 믿고 입술로 고백하면 그것을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더욱 30배, 60배, 100배로 향상하는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3. 우리의 정체성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냐.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 질그릇 형편없는 질그릇입니다. 나의 질그릇 얼마냐. 과학자가 우리가 가치가 얼마나 하는지 분석을 해서 산소, 탄소, 수소, 칼슘 이것으로 다 계산을 해보니까 천원.. 한 사람의 물건값은 천원밖에 안돼요.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그 물건값으로 그렇게 따지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 계시고 주님이 보혈로 값주고 산 거대한 은총이 속에 있기 때문에 이것은 값으로 계산할 수 없어요. 이 질그릇 속에 엄청난 보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닫고 나면은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볼 때도 귀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이 여러분을 볼 때도 귀하게 여겨는 것입니다. 굉장히 하나님이 여러분 위해서 그 독생자를 주셔서 값주고 샀는데 얼마나 귀합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배로 생각하는데 왜 우리는 우리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오늘 이 성경에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완전히 새사람이 된 보배가 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하나님이 택하신 족속이 되고 수많은 사람 중에 하나님이 내 백성이라고 택하시고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왕노릇 한다. 여러분 환경을 지배하는 왕노릇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제사장이 되고 여러분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인 것입니다. 천국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리니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 우리 속에 이미 천국이 이루어졌는데 우리가 그것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보배로운 사람인 것을 깨달아 알아야 돼요.
고린도후서 6장 9절로 10절에 이 말씀을 우리 소리내어서 읽어 보십시다. 하나, 둘, 셋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이게 바로 여러분과 저인 것입니다. 무명한 자 같아도 유명합니다. 하나님이 아는 사람이 되었으니 유명하잖아요. 시시한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 무슨 소용이 있어요? 하나님이 내 아들아, 내 딸아 알아주는데..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지요. 이러므로 우리 자신의 가치를 우리가 알고 그것을 인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이 뭐 예수 믿고 난 다음에도 환경이 안 달라지는데... 환경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달라지고 난 다음에 환경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8절로 11절에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환경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달라졌기 때문에 사방에서 우리를 우겨싸도 옛날 같으면 우겨싸이는데 싸이지 않아요. 옛날 같으면 답답한 일을 당하면
낙심할 것인데 이제는 낙심하지 않아요. 박해를 받아도 버림바 되지 않고 옛날에는 외로워졌는데 지금은 외롭지 않아요. 아무리 박해해도 즐겁고 기뻐해요.
발을 걸어서 망하게 해도 안망해요. 우리가 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환경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 말씀을 여러분께서 어렵지만 꼭 기억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라는 것은 십자가와 일체가 되라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 그러므로 예수님과 나와 분리해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이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십자가를 쳐다보고 예수 죽음 내 죽음이라고 내가 확실히 시인을 하면은 예수부활이 내 부활이 되어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것이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체험적인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를 바라보고 주님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죽었습니다. 그러면 곧장 부활의 생명이 내 것이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생을 많이 하면 그리스도의 축복도 많이 오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힘든 일을 많이 하면 주님이 그것을 할 수 있는 더 많은 힘을 주시고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가 되어 사는 것입니다. 살고 죽는 것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주님이 능력을 주시므로 우리는 주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큰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독일의 문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가 쓴「파우스트」라는 책에서, 파우스트는 문학가이자, 법학자이고, 철학자이자 신학자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인생 문제에 부딪혀 마음에 심각한 고민을 하다가 결국 살아갈 희망을 잃어버리고 자살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부활절의 종소리가 나면서 그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 문제로 내가 죽었고 나를 통하여 너도 죽었으니 내가 부활했는데 너는 왜 부활 못하느냐? 네 문제로 내가 죽었고 내가 부활했는데 왜 너는 부활 못하니?” 이것은 무슨 말이냐면 네가 예수 죽은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 생명도 나타날 것 아니냐. 왜 예수 죽음 내 죽음이 안되느냐? 네 문제로 내가 죽었다. 너도 나와 함께 부활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내 문제로 예수님이 죽으셨다. 그러므로 나도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다. 이게 우리 신앙인 것입니다. 야~ 내 문제 때문에 예수님이 2천년 전에 죽어서 이미 다 청산했으니 이제는 예수님의 부활을 내가 체험하고 산다. 우리가 매일 기도할 때도 부활의 능력으로 기도하고 찬송을 할 때도 부활의 능력으로 찬송을 하고 믿을 때도 부활의 능력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은 이미 다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 후, 파우스트는 기쁨과 소망을 얻어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예수 기쁨 내 기쁨, 예수 소망 내 소망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 누가 뭐라 말해도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녀로서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모신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깨달을 때 우리는 어떤 환경도 이겨내고 풍성한 삶을 누릴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방독 유리 상자 안에 사는 것이 아니라 병균이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삽니다. 그러나 이 모든 병균을 이기신 예수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우리 속에 계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승리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승리자가 아닙니다. 내 속에 있는 예수님이 승리자인 것입니다. 예수 승리 내 승리 그러므로 예수님과 같이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우리는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 보배가 있고 심히 큰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무능하고 버림받은 인생이 아닙니다. 휴지쪽지가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을 아십시오. 안믿는 사람과 나와 뭐가 다르냐. 나는 얼마나 가치가 있느냐. 나의 신분은 어떠한 신분이냐. 그리스도 안에서 이것을 알고 그에 따라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이 깨달은 빛이 여러분의 인생을 영원히 변화시키게 될 것입니다.
우리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가 종교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의식과 형식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교회 왔다 갔다 하는 삶을 사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예수님은 육체로 오셔서 실제로 십자가에서 나 때문에 죽으셨고 나 때문에 장사 지내셨고 나 때문에 부활하셔서 나 때문에 승천하시고 나 때문에 성령을 보내셔서 나 때문에 내 속에 와 계십니다. 예수님을 인하여 살아야 됩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구원받고 예수님으로 인하여 거룩하고 예수님으로 인하여 치료받고 예수님으로 인하여 축복받고 예수님으로 인하여 마귀를 이기고 예수님으로 인하여 부활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고 소유하고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새로운 모습을 바라보게 도와주시옵소서.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 자기 모습을 새롭게 보게 도와주시옵시고 믿음으로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믿게 도와주시옵소서. 내가 믿고 싶으면 믿고 안 믿고 싶으면 안믿었습니다. 믿게 도와주시옵소서.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말하며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방정맞은 말, 저주받은 말 하지 말게 도와주시옵소서. 축복받는 말, 성공하는 말을 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2010. 2. 28. 주일설교


-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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