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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원의 은혜 - 은혜의 복음 (1부) / 시 145:8

    • 릭 워렌
      *.155.90.95
    • 2011.07.23 - 23:07 2010.12.16 - 16:22  2139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시편 145:8)

 

미국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다음 구절들을 완성해 보라.

 

  너무 좋아서 사실이 아닌 것 같으면... 사실이 아니다.
돈을 번다는 것을 옛날 식으로 표현하면... 피땀 흘려 번다.
공짜 점심이란 ... 없다.
고통이 없으면... 소득도 없다.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들을 도우신다.

 

미국식 삶의 방식은 수고하여 버는 것을 가질 수 있으며, 공짜 점심이란 없고, 자신이 깔아놓은 이부자리에 누울 수 있다고 가르친다. 우리 미국인들은 경쟁과 승리의 가치를 매우 잘 인식하며, 근면과 성실의 의미를 안다. 우리는 수고와 땀의 가치를 높이 산다. 우리는 “당신이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을 인생에서 얻습니다” “당신의 삶을 의미심장하게 만드는 것은 당신에게 달려있습니다” ,“그것이 이뤄지는 것은 나에게 달려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을 미국식 근로 윤리라 한다. 미국식 근로 윤리는 좋은 것이지만, 단 문제점은 하나님께서 미국식 근로 윤리에 따라 역사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식 근로 윤리는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우리가 반드시 일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시편 145편 8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근로 윤리 모드에 계시지 않고,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라고 말씀한다. “은혜로우시며”에 동그라미를 쳐라.

성경은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은혜 베풀기를 좋아하신다는 의미다. 하나님께서는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축복하기를 좋아하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본성이다. 당신은 그것이 기쁘지 않은가? 나는 자격 없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는 것이 기쁘다.

은혜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은혜는 우리 믿음의 핵심이다.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의 핵심이다. 은혜를 이해할 때 하나님을 더 가까이 느낀다. 은혜를 더 이해할수록 하나님께 더 끌리고, 하나님을 더 사랑할수록 하나님께 더 감사하게 된다. 그 은혜의 시스템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가까이 이끄신다.

오늘 우리는 새 시리즈를 시작한다. 나는 이 시리즈의 제목을 “은혜의 복음”이라고 붙였다. 은혜란 무엇인가? 은혜는 여러 면을 가진 다이아몬드다. 은혜에는 여러 측면들이 있다. 하나의 정의(定義)로 은혜가 무엇인지 다 설명할 수 없다.

은혜의 한 정의는 “하나님의 사랑의 실행”이다. 또 다른 정의는 “하나님께서 내가 받아 마땅한 것이 아니라, 내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은혜의 정의 중 하나는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잘못들을 보실 때 지으시는 표정이다”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너그럽게 반응하신다.

은혜와 자비의 차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비란 우리가 받아 마땅한 형벌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지 않으시는 것이다. 은혜란 우리가 받을 자격이 없는 축복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여러분 중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은혜를 이해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당신은 은혜로 구원받았다. 당신은 오랜 세월 동안 그것을 알아왔다. 그러나 내가 발견한 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그들은 우리가 일로 구원받은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며 삶의 많은 시간을 보낸다. 여러분 중 많은 사람들은 은혜로 구원받았고 선을 행함으로써 천국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완전해지려 노력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수고로 평생을 보낸다. 그러면서 당신은 하나님을 도무지 기쁘게 하기 어려운 부모로 생각하고서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노트와 펜을 들고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시며 “저것은 잘했어... 저것은 잘못했어”라고 기록하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선행을 일정 횟수 이상 하면, 하나님께서 “참 잘했어!”라고 말씀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만둬! 너는 가치가 없어”라고 말씀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은혜로 구원받았지만, 행위로 살고 있다.

은혜를 정말로 이해하면 삶이 너무나 즐거워진다. 그것은 우리를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게 하는 일이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20년, 30년을 살아도 은혜로 사는 법을 결코 못 배울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시리즈를 하는 것이다. 나의 목표는 이 시리즈를 통해서 당신이 은혜를 이해할 뿐만이 아니라, 은혜를 경험하고, 은혜를 느끼고,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 때 나도 매우 기쁘기 때문이다.

은혜는 여러 가지로 표현된다. 다음 주에 우리는 회복의 은혜를 살펴볼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당신의 죄책감을 어떻게 씻어내시고 다시 시작하도록 도우시는지 살펴볼 것이다. 그 다음에 우리는 붙드시는 은혜를 살펴볼 것이다. 이것은 당신이 포기하고 싶어질 때, 계속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어떻게 주시는가 이다. 우리는 치유의 은혜를 살펴볼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 속에 어떻게 기적들을 행하시는가 이다. 그 다음에 우리는 해방의 은혜를 살펴볼 것이다. 이것은 완벽주의에서 어떻게 해방될 것인가 이다. 그 다음에 우리는 확신의 은혜를 살펴볼 것이다. 이것은 의심을 어떻게 물리칠 것인가 이다. 그 다음에 우리는 베푸는 은혜를 살펴볼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것인가 이다. 그 다음에 성장의 은혜를 살펴볼 것인데, 이것은 어떻게 하면 당신이 하나님께서 원래 의도하신 대로의 사람이 될 수 있는가를 다룬다.

오늘은 그 기반이 되는 구원의 은혜로 시작하려 한다. 오늘 우리는 테드와 낸시가 출연하는 간단한 연극으로 이것을 극화하여 보여주는 시간도 가질 것이다. 여러분들 중 많은 사람들은 오늘의 주제를 이미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당신은 구원의 은혜를 이해할 것이다. 기반이 없으면 건물을 지을 수 없다. 바로 이것이 기반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인 것이 얼마나 수지맞는 거래였는지 정기적으로 상기해야 좋다.

오늘은 구원의 은혜의 다섯 측면들을 살펴보려 한다. 당신이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것을 어떻게 분명히 아는가?

 

  나는 G. R. A. C. E를 두운으로 설명하려 한다.

한 교수가 예일 대학교에 가서 “예일인은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강연한 이야기가 기억난다. 그는 “Y. A. L. E.를 두운으로 사용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서, 예일 대학생의 네 가지 특징을 말했다. 그는 예일 대학생들은 젊고(Young), 도전적이고(Adventurous), 신의가 있고(Loyal), 열정적(Enthusiastic)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간단한 네 개의 두운을 가지고 한 시간 반 동안 계속 말했다. 청중은 지쳤다. 끝나고 나서 그는 앞줄의 학생에게 “나의 강연을 어떻게 생각했는가?”라고 물었다. 청년은 “제가 매사추세츠 공과 대학에 가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나의 GRACE 두운 설교는 그렇게 길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약속한다.

G - GOD'S GIFT TO ME,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선물

로마서 3장 24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것은 값없이 거저 주시는 선물이다. 내가 방금 얘기한 미국식 근로 윤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행위로 구원받고, 수고하여 천국 행 티켓을 획득하고, 내가 충분히 착해질 때 하나님께서 “좋아, 들어오너라”라고 말씀하신다고 생각한다.

길거리에서 50내지 100명에게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으면, 많은 다양한 대답들이 돌아올 것이다. “천국에 가는 길은 착해지려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라거나 “착하려고 정말로 열심히 노력하고 도덕적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라거나 “삶 속에서 나쁜 일들보다 좋은 일들을 많이 하면 하나님께서 ‘너는 좋은 사람이야. 들어오너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라는 말들을 들을 것이다. 그런 말들은 다 은혜가 아닌, 일에 근거한다.

이 성경구절에서 하나님께서 구원은 분명히 값없이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값없이”에 동그라미를 쳐라. 선물을 받으려고 일하는 사람은 없다. 구원은 값없는 선물이다. 하나님께서 구원은 분명히 값없는 선물이라고 말씀하신다. 당신이 수고하여 구원을 획득할 수 없고, 구원을 살 수 없고, 일하여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이것이 기독교와 다른 모든 종교들 간의 차이점이다. 불교, 힌두교, 회교, 기타 등등의 어느 신앙, 어느 종교 체계도 다 마찬가지다. 모든 종교를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모든 종교들 중에서 기독교만이 은혜 위에 세워진 유일한 종교로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구원을 거저 주신다고 말한다. 당신이 구원을 얻기 위해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다른 모든 종교들은 일에 근거하는데, 그것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행위”다. 종교마다 신의 인정을 받기 위해 하는 특정한 것들이 있다. 종교에 따라 그것은 다양하다. 각 종교 체계마다 다르다. 한 종교에서는 “이것들”을 하라 하고, 다른 종교에서는 “저것들”을 하라고 한다. 해야 하는 어떤 것이 항상 있다. 그것은 규칙, 규정, 의식, 기타 등등이다.

반면에, 기독교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이루었다”이다. 당신을 위해 이미 다 이루어졌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구원을 위한 값을 치르셨다. 당신의 죄들을 위한 값을 치르셨다. 이미 다 이루어졌다.

한 번은 내가 어떤 사람에게 “릭 목사님, 제가 어떻게 해야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나에게 물어보라고 시켰다. 나는 그에게 장난을 좀 쳤다. 나는 “너무 늦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그는 좀 충격을 받았다. 나는 설명했다. “당신은 2000년이나 늦었어요! 당신의 구원을 위해 이루어져야할 일이 이미 다 이루어졌기 때문에 당신은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다 하셨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값을 치르셨기 때문에 이제 구원은 당신이 값없이 받는 선물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하신 말씀 중 하나가 “다 이루었다”였다. 예수님께서 “나는 끝났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때 끝나신 것이 아니고, 오늘도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무엇이 다 이루어진 것인가? 당신의 구원이 다 이루어졌다. 필요한 누구에게든 은혜를 베풀려는 계획이 다 이루어졌다. 완료되었다. 하나님께서 “여기 있다. 이것은 값없이 주는 선물이야”라고 말씀하신다.

당신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단지 하나님의 은혜의 값없는 선물을 받아들여라. 나는 내가 한 일에 근거하여 천국에 들어가지 않는다. 나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일에 근거하여 천국에 들어간다.

이것은 당신이 받을 사상 최대의 선물이다. 당신에게 앞으로도 이보다 더 좋은 거래는 없을 것이다. 당신이 은혜를 정말로 이해한다면, 당신은 은혜를 받아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은혜는 값을 매길 수 없이 귀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선물이다.

 

R - RECEIVED BY FAITH, 믿음으로 받는다

하나님의 선물은 믿음으로 받는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서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라고 말씀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에 동그라미를 쳐라. 믿음은 천국으로 가는 문을 여는 열쇠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선물이다. 만일 내가 당신에게 줄 선물이 있어서 “여기 당신에게 선물로 주는 십 만원이 있어요. 와서 가져가세요”라고 한다면, 당신이 와서 믿음으로 받지 않는 한, 그 돈은 제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이다. 내가 이것을 당신에게 준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구원은 선물이므로 자랑할 수 없다고 말씀한다. 만일 당신이 일한 대가로 천국에 간다면, 천국이 얼마나 괴로운 곳이 될지 아는가?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어떻게 천국에 오게 되었는지 자랑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서로 남보다 한 수 앞서려고 우리가 땅에서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떠벌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너의 구원은 은혜의 선물이다. 너를 값없이 용서한다. 너에게 값없이 천국을 준다”라고 말씀하신다. 당신은 받은 선물을 가지고 어떻게 하는가? 선물을 받은 것이 자기 공로인 양 자랑하지 않는다. 다만 선물을 받아들이고 감사할 뿐이다.

로마서 4장 16절,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는다. [이것은 구원의 약속을 말한다] 이렇게 된 것은 그 약속이 거저 주는 선물이 되게 하기 위해서다: NCV)...”, “약속”에 동그라미를 쳐라. 구원은 나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다. 나의 선함에 근거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다. 내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나의 공로가 아니, 하나님의 자비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든 명예와 영광을 취하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구원은 믿음으로 거저 받는 선물이다.

성경에는 이 은혜의 원리를 설명하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그 중 내가 좋아하는 한 이야기는 구약 사무엘하 9장에 나오는 므비보셋이라는 장애인 소년의 이야기다. 그런 이름을 갖는다면 어떻겠는가? 아마도 사람들은 줄여서 그를 피비라고 불렀을 것이다! 므비보셋은 요나단의 아들이었고, 구약에 등장하는 사울 왕의 손자였다.

다윗과 사울의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다윗은 장차 왕이 될 사람이었다. 사울은 현재의 왕이었고 다윗을 시기했다. 그래서 다윗의 거의 평생 동안,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 쫓아 다녔다. 사울은 다윗을 추적하며 산야를 누볐다. 다윗은 대부분의 시간을 사울로부터 숨어 지내면서, 시기 때문에 살해당하는 것을 피했다. 그러나 다윗은 결코 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과 가장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 둘은 만일 서로가 먼저 죽으면 남은 가족을 돌보겠다는 비밀 언약을 맺었다. 나중에 사울과 요나단이 전사했다. 그리고 다윗은 왕이 되었다. 사울의 모든 친척들은 즉시 두려워하며 생각했다. “사울 왕이 평생 죽이려 따라다녔던 다윗이 이제 통치자가 되었으니 그가 우리 모두를 죽일 거야.” 그들 모두는 도망가 숨으려 했다.

그들 중 하나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었다. 유모가 므비보셋이 아기일 적에 안고 도망가다가 떨어뜨렸다. 아기의 다리가 부러져 므비보셋은 마비 환자가 되었다. 그래서 이 어린 장애인 소년은 이제 왕이 된 다윗이 보복할까 두려워하며 살았고 목숨을 잃을까봐 전전긍긍했다.

어느 날 다윗이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은총(은혜)을 베풀리라”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예, 있습니다. 므비보셋이라는 장애인 소년이 있습니다. 그는 걷지 못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다윗은 “그를 내게 데려오너라”라고 말했다. 므비보셋이 얼마나 두려워했을지 상상이 될 것이다. “왕이 나를 궁정으로 부르다니 나는 처형될 거야. 끝이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므비보셋이 갔을 때 다윗의 말은 이랬다. “므비보셋아, 내가 너를 나의 가족으로 받아들이겠다. 그러니 남은 평생을 여기 궁정에서 살기 바란다. 내가 너의 모든 청구서들을 지불하겠다. 내가 네 모든 필요들을 채우겠다. 매일 저녁 나와 함께 식사하자. 나는 너를 내 친아들의 하나처럼 대우하겠다.” 그것이 은혜다.

성경은 우리가 삶의 어떤 영역들에서 장애이고 불구일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다고 말씀한다. 우리의 감정이 상했거나 나쁜 일들이 우리의 삶 속에 일어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오셔서 “너를 내 가족으로 삼겠다. 나와 함께 식탁에 앉자. 너를 왕족으로, 나의 가족으로 대우하겠다. 이것은 단지 나의 은혜다”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탕자에 대해 얘기하신 것을 기억하는가? 한 남자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둘 중 하나는 조바심을 잘 내고 독립적인 성격이었다. 그가 “아버지, 유산의 절반을 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승낙하고, 장래 유산의 절반을 나누어 즉시 아들에게 주었고, 아들은 떠났다. 그는 마을을 지나쳐 예루살렘의 유흥가로 가서 주색잡기에 빠졌다. 그는 술, 여자, 노래 속에서 흥청망청 살며 탕진하고 돈을 다 날렸다. 어느 날 그는 돈이 바닥났고, 예루살렘에는 예금 인출기가 없었다. 그는 도덕적, 영적, 재정적 등등 가능한 모든 면에서 바닥에 떨어졌다. 사실, 그는 결국 돼지우리에서 돼지를 먹이게 되었고, 너무 배고픈 나머지 돼지들이 먹는 사료를 먹곤 했다.

알다시피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므로 그것은 갈 때까지 간 것이었다. 그는 돼지와 살고 돼지 사료를 먹었다. 그가 속한 문화에서는 더 이상 낮아질 수 없이 낮아진 것이었다. 어느 날 그런 혼란 속에서 둘째 아들은 생각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아버지의 종들은 이것보다 좋은 대우를 받아. 집으로 돌아가야겠어. 아버지께 돌아가서 ‘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 과오를 저질렀어요. 죄송합니다. 더 이상은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꾼 중 하나로 삼아주세요. 그러면 저는 아들이 아니라, 종으로서 남은 평생 아버지를 위해 일하겠어요. 왜냐하면 제가 세상에서 받는 대접보다 아버지의 종들이 더 잘 대접받기 때문이에요.’”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탕자가 집으로 돌아올 때 아버지가 탕자를 멀리서 보았다. 아버지는 아들을 마중하러 달려나갔다. 그리고 아들을 와락 얼싸안았다. 아들이 목욕하고 돼지 냄새를 지울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아들을 얼싸안고서 “왕복을 내오너라. 보석을 내오너라. 이 아들에게 우리 가문의 인장반지를 끼워 주어라. 잔치를 열자! 내 아들이 집으로 돌아왔다”라고 말했다. 그것이 은혜다. 그 아들은 정죄를 받아 마땅했다. 판단 받고 거절당하고 “내가 뭐랬니!”라는 말을 들어 마땅했다. 그러나 그 대신 그는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영접되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고, 그 은혜를 믿음으로 받을 수 있다.

 

A - AVAILABLE TO EVERYONE, 모든 사람들에게 유효하다

하나님께서 편애하지 않으신다. 당신의 배경이 상관없고, 당신의 신분이 상관없고, 당신의 죄들이 상관없다. 당신이 종교적인 사람이었든, 종교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든, 종교적 배경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로마서 4장 16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누구인가? 유대인들이다. 유대인들에게 모세의 율법이 주어졌다. 모세가 그들의 리더였다. 그들은 옳은 것을 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을 나머지 우리들보다 먼저 받았다.

왜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선택된 백성이라고 불렸는지 생각해보았는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나머지 우리들보다 더 사랑하시는가? 아니다. 그들이 선택된 데는 목적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나머지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고, 참되신 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세상에 말하도록 선택되었다. 그것을 위해 그들이 선택되었다. 그들은 나머지 우리에 대한 선교사들 같았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 임무를 교회에 주셨고, 교회는 유대인, 이방인 등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포함한다. 믿음으로 마음을 여는 누구에게나 구원이 유효하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누구든지”에 동그라미를 쳐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을 제한하는 할당량은 없다. 정말로 착한 사람들, 정말로 신앙적으로 열심인 사람들, 정말로 똑똑한 사람들만이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 “누구든지”라고 말씀한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

슬픈 점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을 알고,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물을 알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행위로 천국에 가려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삶 속의 어떤 점들만으로 그들이 충분히 착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삶 속에서 정말로 멋진 일들을 했을 수 있지만, 그 일들이 당신을 천국에 들어가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포기하라. 천국은 완전한 곳이고, 당신은 완전하지 않다. 당신이 천국에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시는 선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유효하다.

 

C - GRACE COMES THROUGH CHRIST, 은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

요한복음 1장 17절,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가?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국에 가는 유일한 길이신가? 왜 부처는 아닌가? 왜 다른 누구는 아닌가? 왜 예수 그리스도이신가?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천국 입장료를 지불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구원을 위한 값을 이미 지불하셨다. 예수님 외에 지금까지 다른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죄들을 위한 값을 지불하셨다.

은혜는 거저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은혜는 값싸지 않다. 은혜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지불되었다. 당신의 티켓 값을 예수님께서 지불하셨다.

율법은 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너는 실패했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은혜는 “이렇게 하면 정상궤도로 돌아갈 수 있어. 너는 용서받았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자”라고 말한다.

로마서 5장 15절,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인 사람, 신자를 가리켜 성경에서 자주 하는 표현은 “그리스도 안에”다. “그리스도 안에”라는 구절은 신약에서 120회 이상 사용된다.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구원을 얻은 사람을 가리켜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한다.

이렇게 설명하겠다. 이 카드를 내 삶이라고 하자. 그리고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자. 내 삶 속에는 잘못들이 많아서 천국과 같이 완전한 곳에 살기에는 나를 부적격자로 만든다. 내 삶 속의 어떤 것들이 내 삶을 엉망으로 만들었고, 나는 잘못들을 저질렀고, 과거의 어떤 일들은 너무 부끄러워서 아무도 모르기를 바라고 할 수 있다면 다시 하고 싶다. 내가 남에게, 혹은 남들이 나에게 깊은 상처를 주어서 정말로 아픔이 되는 것들도 있다. 내가 저지른 죄들, 내가 한 나쁜 생각들,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한 행동들이 있다. 나는 여러 면에서 내 삶을 망쳤고 남들이 내 삶을 망치는 것을 허용하기도 했다. 정말로 부끄러운 짓들을 해서 내 삶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엉망이 되고 깨어지고 손상되고 상처투성이인 삶을 보면서 “이런 삶으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어림도 없어. 내 삶은 분명히 완전하지 않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통 상처투성이고 온통 너덜거리고 온통 실수 투성이고 온통 죄뿐인 내 삶을 취하신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 와서 “예수님, 제 삶을 당신께 활짝 엽니다. 당신께서 값없이 주시는 구원의 선물을 받기 원합니다”라고 말씀드릴 때, 하나님께서 나를 그리스도 안에 두신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나는 그리스도의 티켓으로 천국에 들어간다. 하나님께서 나를 은혜의 눈으로 보실 때,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함만 보인다.

갈라디아서 2장 21절,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과]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만일 당신이 자신의 공로로 구원받을 수 있고 천국에 갈 수 있다면, 십자가는 낭비였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도움 없이 천국에 갈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 오셔서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자신을 낭비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에 가든가, 아니면 가지 못하던가 둘 중의 하나뿐이다.

구원은 거저 주시는 선물이다. 단지 당신이 믿음으로 받으면 된다.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하신 일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하시는 모든 일이다. GRACE를 두운으로 달리 표현하면, 은혜는 그리스도께서 치르신 값으로 우리가 얻는 하나님의 부요함(God's Riches At Christ's Expense)이다. 은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으며, 오직 그리스도로만 말미암는다.

 

E - IT IS EXTENDED THROUGHOUT ETERNITY, 영원까지 이어진다

로마서 6장 23절,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the free gift: NLT)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영생”에 동그라미를 쳐라.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는 영원히 유지될 것이다. 영생도 은혜가 주는 혜택 중 하나다. 영원한 생명이 있다. 은혜는 계속 주는 은사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마지막을 위해 아껴두셨다. 가장 좋은 것은 앞으로 올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면 점점 더 좋아진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 천국의 영생이라고 말씀한다.

천국이 정말로 어떤 곳일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성경은 천국이 어떤 곳일지를 네 가지로 말씀한다.

1.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먼저 죽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재회하는 곳.

2. 상급을 받는 곳. 우리가 여기 지상에서 개발한 인격과 다른 사람들을 섬긴 것에 대해 상급을 받는다.

3. 우리의 특성에 근거하여 우리가 하고 싶은 새로운 일을 배정 받는 곳.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에 근거하여 우리가 하고 싶은 새로운 임무들을 받을 것이다.

4. 우리가 모든 아픔, 고통, 슬픔, 애통, 침체, 외로움 기타 등등으로부터 해방되는 곳.

그곳은 참으로 놀라운 곳일 것이며,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런데 단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그것은 당신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선물을 받았는데, 포장을 뜯어보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선물로서 가치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혜의 선물을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지만, 또한 이 선물은 특별히 당신의 삶에 적합하게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당신에게 정확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아시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 가장 명석한 한 분이 미국 경영학의 아버지로서 90세에 달하신 피터 드러커다. 그가 쓰는 모든 글은 월 스트리트 저널에 게재된다. 그가 쓴 수십 권의 책들이 대학교 교재들로 사용된다. 그는 정말로 명석한 분이다. 그는 여러 해 동안 나의 멘토이셨다. 나는 어느 날 피터에게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셨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어떤 사람이 내게 은혜를 처음 설명해주었을 때, 이보다 더 좋은 거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네”라고 말했다.

오늘 우리가 얘기한 거래보다 더 좋은 거래는 결코 다시 없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에 당신의 삶을 열어라. 그것이 당신의 유일한 희망이며, 그것은 공짜다.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안다. “내 삶을 이렇게 망쳐놓고서 내가 하나님께로 간다면, 하나님께서 내게 긴 설교를 늘어놓으실 거야. 나는 정죄당하는 느낌일 거야. 나는 판단 받는 느낌일 거야. 기분이 나쁠 거야. 만일 내가 그리스도께로 간다면, 꾸지람과 책망을 몽땅 들을 것이고, 기분이 엄청 나빠질 거야. 나는 너무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으니까 말이야. 하나님께서 ‘그러게 내가 뭐랬니!’라고 말씀하실 거야.”

만일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은혜는 그런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셨다.

수많은 도덕적 실패들을 한 어느 여자의 이야기가 성경에 있다. 그녀는 아무나하고 동침했다. 그녀에 대한 악평이 자자했다. 어느 날 어떤 종교 지도자들이 그녀가 누군가와 동침하고 있는 현장을 적발하여 그녀를 예수님께 데려와서 땅바닥에 쓰러뜨리고 예수님께서 그녀를 정죄하실 것을 예상했다. “하나님의 온갖 원칙들을 어긴 이 여자를 어떻게 하실 겁니까?” 예수님께서 그녀의 인간적 존엄성을 지켜주셨다. 그녀를 방어해주셨다. 무리 앞에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무리 중에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므로 모두가 슬슬 자리를 떴다. 그런 다음에 일 대 일의 개인적인 만남 속에서 예수님께서 죄책감이 가득한 그 여자를 보시고 “너를 정죄하던 자들이 어디 있느냐?”라고 말씀하셨다. 그녀는 “그들은 다 가고 없습니다, 주님”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매우 의미심장한 두 가지를 말씀하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그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전부였다. 장광설도, 설교도 없었다. 그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께로 가면 정죄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당신은 은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도께로 오라.

사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이사야 30장 18절,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은혜를 베풀고 싶어하신다. 자격 없는 사람들을 축복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성이다. 당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기를 하나님께서 기다리신다.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시는 것을 즐겨하신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화나 계시지 않는다. 당신으로 인해 하나님의 마음이 상하셨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집으로 어서 돌아오기를 바라신다.

그런데 은혜는 내가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들이고 나서 내가 원하는 대로 아무렇게나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을 조롱하며? 물론 아니다.

예수님께서 매우 의미심장한 두 가지를 말씀하셨다. “나는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고, 그 다음에 “이제 그것을 그만해라. 가서 더 이상 죄를 짓지 말아라. 네가 변화되도록 내가 도와주겠다”라고 말씀하셨다. “자멸적이고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들을 무엇이든 계속 하거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바로 지금 여기서 받을 수 있다. 오늘. 그래서 하나님께서 당신을 여기 데려오셨다. 당신이 여기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여기 데려오셨다. 당신이 아직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인 적이 없다면, 무엇을 더 기다리겠는가?

 

기도:
다음 주부터 이어서 하나님의 회복의 은혜, 붙드시는 은혜, 치유의 은혜 등등을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먼저 당신은 기반이 되는 구원의 은혜를 해결해야 한다. 당신의 마음 속으로 이 기도를 드리지 않겠는가? “하나님, 하나님의 완전한 천국에 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 정도로 제가 결코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제가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당신의 은혜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제가 충분히 선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저의 노력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 교만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제게 필요한 것을 주시고, 제가 받아 마땅한 것을 주지 않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용서하심을 감사하며, 오늘 제가 그 용서를 구합니다. 예수님, 십자가에서 저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심을 감사합니다. 제가 예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오늘 받아들입니다. 오늘 이후로 제 삶을 인도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purposedriven.co.kr 에서 발췌하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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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있는 사람 / 시 1:1~6조용기
  • 일곱 가지 큰 죄악 - ⑥게으름 / 삼상3:10-14이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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