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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님의 부활 / 고전 15:12~20

    • 조용기
      *.155.91.47
    • 2012.04.10 - 20:27  1750

<서론>
오늘 저는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2천 년 전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에 있는 골고다 산정에서 십자가의 극형을 당하여 죽으신 예수님께서 아리마대 부자 요셉의 무덤에서 장사 지낸지 3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이 복음은 2천년 동안 온 세상 끝까지 전파되고 그리고 구주로 경배되고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우리에게 그처럼 중요한 사건인가 우리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국의 사학자 토마스 아놀드 씨는 역사를 연구하다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보다 완전하게 증명될 수 있는 사건은 인류 역사 가운데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영국의 무신론자였던 리틀스톤 경과 길버트 웨스트 씨는 예수님의 부활과 바울의 변화를 거짓말이라고 반증하기 위해 연구하다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어 자신들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변호사 프랑크 모리슨 씨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하기 위해서 “누가 돌을 옮겼는가?”라는 제목으로 예수님을 부정하는 책을 적으려고 성경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공부하다가 성령님의 감화를 받아서 오히려 부활의 사실성을 철저히 변호하는 책을 쓰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관심을 집중합니다. 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우리에게 그처럼 중요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본론>
1. 아담의 타락과 마귀의 다스림
첫째로, 아담의 타락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세계는 사망의 지배하에 떨어지고 사망의 권세잡은 마귀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계속 해오고 있습니다. 인간은 영혼의 죽음과 죄악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 비참한 존재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존귀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여러분과 나를 굉장히 존귀하여 만들어 놓았는데 타락하므로 말미암아 너무나 비참한 존재가 되고 만 것입니다. 죽음과 죄악의 노예가 되어 마귀가 시키는 데로 끌려 다닙니다.
에스겔 18장 4절에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
범죄하는 영혼은 죽으리라 했는데 우리 모두 다 아담 안에서 범죄했기 때문에 다 죽었습니다.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가 끊어진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8절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마귀는 누구보다 먼저 하나님을 반역한 죄악의 존재로써 우리 조상을 유혹해서 자기와 똑같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교만한 죄를 짓게 만든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은 영혼의 죽음과 노예 뿐 아니라 육체의 질병과 죽음도 가져왔습니다. 성경에는 원래는 우리가 죽지 않을 몸을 얻었는데 죄로 말미암아 육체에 사망이 왔습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이 몸이 흙으로 돌아가자면 늙고 병들어야 되기 때문에 병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가장 고통스러운 질병이 그 배후에는 죄로 말미암아 왔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저주를 받아서 하는 것마다 고통을 당하고 결국에는 인간의 삶이란 절망의 삶이 되고 만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7절로 19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실존주의 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는 인생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이란 사형 언도를 받은 죄수가 감방에서 밖을 내다보면서 한 사람 두 사람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우리가 이 세상을 큰 감옥으로 비유하면 한 사람 두 사람 내 이웃이 죽음이라는 사형장에서 처형당해서 사라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죽음은 빈부귀천 남녀노유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당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간은 그 영혼이 죽고 세상은 마귀의 다스림을 받게 되고 그 이후 인생은 육신의 질병과 죽음, 가난과 저주와 절망의 삶 가운데 떨어져서 노예 생활을 하며 오늘날까지 살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왜 오셨나요?

2.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우리의 첫 조상 아담이 실패해서 그 후손들을 처참한 절망으로 떨어뜨려 놓았는데 이것 누가 건질 수가 없어요. 물에 빠져서 허덕이며 몸부림치는 사람이 자기 힘으로 헤엄쳐 못 나가면 누가 와서 건져주어야 되겠는데 우리 인류 역사를 통해서 우리를 건져 주겠다고 나온 사람이 있어도 자기도 스스로 자기를 건지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다 죄의 절망에 빠졌고 삶이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대답이 없고 죽음의 절망에 허무하게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오신 이후는 이와 같은 처음 아담의 자손들이 절망에 빠져서 헤어나갈 길이 없기 때문에 영원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영혼의 옷을 벗고 시간 속에 뛰어 들어와서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지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와서 사망의 대가를 지불해야 돼요. 공짜는 없습니다. 우리가 죄값으로 다 죽잖아요.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죄값을 지불하자면 대신 죽어야 됩니다. 죽어서 안살아나면 죄값을 지불 못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죄값을 다 지불했으면 감옥에서 나와야지요. 예수님은 죽었다가 부활해야 될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새로운 인류 조상으로 오셨습니다. 처음 조상은 아담이고... 예수님은 마지막 인류 조상입니다. 예수님 이외에 다른 인류 조상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첫 아담은 우리 육신의 생명의 조상이 되었고 마지막 인류조상 예수 그리스도는 영혼의 구원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조상으로 오셔서 마귀와 사망의 세력에 선전포고를 하시고 십자가에서 인류의 대속물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청산하신 것은 바로 마귀가 가장 핵심적으로 잡고 있는 마귀의 힘의 근원인 것입니다. 마귀가 잡고 있는 힘의 근원을 하나하나 제거해 버리니까 마귀는 무력하게 돼버리고 만 것입니다. 요사이 선거하니까 모든 사람이 상대방 후보의 과거를 들춰내는 것입니다. 믿든지 아니 믿든지 들춰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욕을 해도 과거에 들추어낸 것이 거짓되고 헛된 것이라는 것이 증명되면 더 이상 공격할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이 마귀는 이후로 꽉잡고 있는데 예수님이 죄를 다 청산해 버리고 나니까 우리를 더 이상 공격할 수 있는 꺼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무력하게 되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청산하신 것입니다. 그냥 청산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구석구석마다 다 찾아서 청산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로 5절에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우리가 스스로 살아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예수님이 우리 대신해서 죄를 다 책임지고 고통당하여 청산하고 하나님은 그 결과 값없이 선물로 우리에게 용서와 의로움을 주셨기 때문에 놀라운 축복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마귀의 가지고 있는 큰 열쇠인 죄와 허물을 청산하니 그 연결고리는 마귀는 잃어버리지 않았습니까? 그 다음에는 병과 저주를 청산하셨습니다. 마귀는 타락한 인류를 잡고 있는 또 한가지 고리가 병과 저주인 것입니다.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그를 잡고서 뒤흔듭니다. 저주를 받아서 허덕이고 고난받게 합니다. 왜, 마귀는 그것이 자기가 할 본분이기 때문에... 너 타락해서 죄값으로 병들어야 된다. 저주받아야 된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병을 가져오고 저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병과 저주를 청산해 버리면 마귀가 더 우리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열쇠를 또하나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에 로마의 군인들에게 끌려가서 채찍에 맞았습니다. 그 장정이 엄청난 연단된 체력으로 채찍으로 번갈아 가면서 예수님을 때립니다. 그 때 역사에 기록된 것을 보면 예수님의 혈관이 터지고 살이 찢어지고 내장이 들여다 보였다 했었습니다. 얼마나 맞았던지 내장이 들여다보였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들입니다. 그는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나흘만에 살려내신 분입니다. 하나님이여 나 그만 맞으렵니다. 나 못하겠어요 그러면 하나님이 놓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말도 안했습니다. 예수님의 침묵을 사람들은 희안하게 생각합니다. 왜 예수님이 아무 말도 안하셨느냐. 꾸짖지도 아니하시고 협박도 아니하시고 저주도 아니하시고 침묵 가운데 다 얻어 맞은 것은 끝까지 여러분과 나의 병을 청산하겠다고 각오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거기에 무엇이라도 안하겠다고 변명을 했으면 우리의 육신의 병이 제외될 수 있습니다. 암은 제외하고 관절염은 제외하고 중풍병은 제외하고 책임지겠습니다. 그러면 그 병은 제외되는 것이지요. 예수님이 여러분 우리를 위해서 매를 맞은 것은 모든 병의 고통을 철저히 맞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법적으로 여러분은 2천년 전에 이미 다 청산된 것입니다. 다 고침받은 것입니다. 지금 얼마나 병이 들어 아파서 침상에 드러누워 있어도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너 법적으로 나은 사람이다. 실제는 아픈데요? 몰라서 그렇다. 법적으로 내 집인데 남이 점령하고 있으면 내가 모르면 내 집을 뺏기지요. 그러나 알았으면 여러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냥 사세요. 살았으니까 사세요 그러겠습니까? 쳐들어 갈 것입니까? 내 집에 왜 들어와 있느냐 이 도둑놈아! 그리고 소송을 걸고 법적으로 내몰아칠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이 주인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내 몸의 주인은 나다. 마귀가 아니다. 그런데 왜 마귀가 와서 떡 점령하고 두들겨 패고 찢고 물고 짓밟고 해도 허허허허~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당신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 있겠습니까? 눈에 불을 켜고 마귀를 대적하라 저가 너를 피하리라 했었으니까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대적하고 우리의 권리를 찾아야 될 것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과 저주는 마귀가 더 이상 가지고서 우리 위에 군림할 수 없습니다. 청산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 부요하신 예수님이 그렇게 가난하게 된 것은 우리 때문에 그렇다고 성경에 말합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그러므로 주님이 여러분의 가난을 이미 다 청산하고 내가 너 때문에 가난해졌으니 너는 가난하지 말아라.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라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복을 받게 되고 또 반드시 복을 주십니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착한 일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복을 받아서 나혼자 포켓에 다 집어 넣고 나혼자 하나님께 복을 받아서 벤츠를 10대씩 가지고 자가용 비행기를 굴리고 호화저택을 짓고 살고 그렇게 하라고 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복을 주면 나의 복을 이웃과 나누기 위해서 나누라고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복 받은 것은 사명을 가지고 받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나누라고 주신 복이니 나누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복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예수님은 병과 저주를 다 청산했지요. 그 다음 예수님께서 끝까지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혼이 음부에 내려가서 사흘 동안 음부에 있었습니다. 여러분과 내가 죽어서 음부에 내려갈 것을 예수님이 내려가서 다 청산하고 부활하셨습니다. 청산 못했으면 음부에 잡혔겠지요. 지금까지 잡혀있다면 예수님 부활 못했으면 지금까지 잡혀 있다고 밖에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흘만에 부활하시므로 사망과 음부가 청산되어 버렸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다 갚았다. 빚쟁이에게 내가 잡혀 있었는데 빚을 갚고 나니까 빚쟁이가 더 잡고 있을 권한이 없잖아요. 털털 털어버리고 나올 수 있잖아요. 여러분 마귀가 빚쟁이 잡듯이 여러분을 잡고 있었으나 죽음과 음부가 여러분을 잡고 있을지라도 여러분 힘으로는 못 털고 나와요.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 우리 대신해서 죄를 사흘만에 다 청산하시고 그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서 해방되어 나왔기 때문에 이제는 사망도 음부도 여러분을 붙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 가지고 마귀가 여러분과 나를 협박할 수 없습니다.
성경 로마서 5장 21절에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해서 지옥에 불타게 만들었으나 예수님은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영생하도록 천국에 영생하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장 10절에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그러므로 사망은 철폐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썩지 않고 영원한 삶을 사는 은혜가 이제 우리에게 확실하게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 가만히 보세요. 마귀가 죄의 빙자를 대고 여러분을 포로로 잡았는데 죄가 청산되어 버려서 이제 더 이상 잡을 수가 없지요. 허물과 병을 빙자로 잡고 있었으나 허물도 병도 예수님이 갚아버렸지요. 그 다음에는 우리가 저주 받았으니 저주와 실패와 가난을 빌미로 해서 우리를 잡고 있었으나 예수님이 가난해져서 저주를 받아서 다 청산해 버렸으니까 그것도 잡을 수가 없지요. 마지막으로 우리를 사망과 음부로써 잡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어서 음부에 내려가서 사흘만에 다 청산하고 부활해서 나와 버렸었으니 그것도 이제 잡을 수 없지요. 그러면 마귀가 우리를 잡고 있는 것은 다 풀려 버리고 만 것입니다. 사탄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네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네가 쏘는 것은 죄요, 질병이요, 저주요, 사망과 음부였으나 다 예수님이 청산해 버렸으니 나는 자유와 해방을 얻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해방되었습니다. 우리가 일정 36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다가 해방되었을 때 그때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 대단했어요. 그 역사적으로 체험 안해본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일본 사람에게 압박을 당하고 묶여 있다가 해방된 날 갑자기 태극기가 나왔는데 어디서 그렇게 많은 태극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난 다음에 모두다 애국가를 부르면서 길거리에 모여서 얼싸안고 춤을 추고 그래서 나는 어린 생각에 당장 천당이 내려온 줄 알았습니다. 야~ 이제는 천당이 내려오는구나. 살아보니까 천당도 아니고 더 무서운 지옥이 왔어요. 6.25사변이 왔습니다. 참 우리 한국 국민이 수난의 국민입니다. 일본 일정하에서 고통당한 것 말로 다할 수 없고 해방되고 난 다음 곧장 6.25사변으로 다 잃어버리고 남부여대하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피난생활했고 그 많은 고통 가운데 오늘날 순식간에 이렇게 잘살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니까 예수님을 통해서 마귀가 묶어 놓은 모든 끈이 다 끊어지고 속박이 사라지고 우리 영혼이 해방을 얻고 자유를 얻고 범사에 해방과 자유를 얻고 건강하고 해방과 자유를 얻어 우리는 전인구원을 얻어 오늘날 잘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이 은혜를 잊지 말아야 돼요. 항상 우리의 축복이 우리의 힘으로 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감사하고 찬송해야 되는 것입니다. 야훼께서 집을 짓지 아니하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고 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꾼의 경성함이 허사입니다. 하나님이 안세우는 집은 무너지고 하나님이 지키지 않는 성은 결국 침노로 다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의지하면 우리 마음속에 참된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다른 여러 종교에 정통했던 스티븐 닐 주교는 그리스도인의 용서는 그 어떤 종교보다도 독창적이라고 말했습니다. 힌두교에서는 용서라는 말이 없습니다. 업보를 말합니다. 좋은 업보를 많이 세우면 후생에 아주 좋게 태어나고 전생에 나쁜 업보를 쌓으면 후생에 잘못하면 짐승으로 태어나든지 뱀이나 개구리 같은 파충류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나는 어릴 때 우리가 할머니가 그 이야기를 해서 굉장히 무섭더라구요. 할머님이 진지 잡수시고 바느질하면서 할머니 곁에 있으면 이 세상에서 거짓말하고 도둑질하고 잘못 살면 저 세상에 너 뱀이 되기도 하고 원숭이가 될 수도 있고 개도 될 수 있고 돼지도 될 수 있고.. 그래서 그 다음부터 꿈자리가 더 사나워서 돼지가 되는 꿈도 꾸고 원숭이가 되는 꿈도 꾸었다구요. 우리 할머님이 철저한 불교신자였는데 불교신자의 신앙에다가 또 힌두교를 합쳐 가지고서 두루뭉실이 종교를 믿었어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자꾸 하시니까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러나 실제로 힌두교에서는 업보를 말하지 용서는 없습니다. 절대 용서없어요. 여러분이 이 세상에 잘못하면 잘못한 그대로 저 세상에서 보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의 가능성이 없지요. 힌두신은 뭐라고 말하는지 압니까? 네가 죄지었으니 네가 갚으라고 내가 왜 책임지느냐. 네가 지었으니 네가 갚으라. 그러나 예수님은 뭐라고 말합니까? 너가 지었으나 내가 갚을게. 나는 어느 어머니가 재산이 많은데 자식이 어머니 재산을 탐해 가지고서 어머니를 독살했어요. 어머니가 죽어가는 마당에 알아보니까 바로 자기를 독살한 사람이 자기 아들이라. 그 자리에 어머니가 칼로써 혈관을 잘랐습니다. 그것 왜 자르냐니까. 우리 아들이 감옥가면 안되니까 내가 자결했다고 하기 위해서 내 혈관을 자른다. 그 말을 내가 읽었을 때 예수님이 생각났습니다. 너희가 죄를 지었지만 너희가 지옥가는 것을 내가 감당할 수 없으니까 내가 가마! 내가 그냥 하나님으로써 갈수는 없으니까 내가 사람으로와서 너 대신 짊어지마. 그래서 우리 호적에 주님께서 들어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내가 지었습니다. 하나님 이 사람들 죄 아니에요. 내 죄에요. 내가 다 짊어졌어요. 내가 벌받겠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러한 신앙인 것입니다. 엄청나게 다르지요. 이슬람교는 자기들 알라신의 이름이 99개가 있습니다. 99개의 알라신의 이름이지만 그 신 가운데 아버지라는 이름이 한마디도 없습니다. 전부 심판하는 신이지 아버지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없는데 용서해 달라고 손을 내밀 수 있어요? 성경에 보면 탕자가 아버지 재산 가지고 다 창기와 먹어버리고 난 다음에 나중에 돼지 소굴에 들어가서 살 수 없으니까 빈손 들고 아버지에게 용서해 달라고 나왔지 않습니까? 빈손 들고 나왔지 않습니까?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 아버지가 뛰어 나와서 그 아들을 얼싸안고 내 아들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얻었으니 이렇게 좋을 수가 있냐고 제일 좋은 옷 갖다 입혀라. 신발을 신겨라. 가락지를 끼워라. 살찐 송아지를 잡아라. 우리 먹고 즐기자. 아버지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버지가 안되고 주인이면 주인의 재산을 먹고 도망쳤다가 나중에 못살겠으니까 주인에게 손들고 오면 저 자식 잡아서 감옥에 쳐 넣어라. 어디에 남의 재산 다 갖다 먹고 못살겠으니까 도와달라고 하느냐.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아버지하고 주인하고는 이렇게 다르다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여러분의 아버지십니다.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내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못났어요. 나는 버림받아야 마땅한 자식인데요. 그런데도 너는 내것이다. 옷이 더러우면 내가 입혀주마. 신발을 신겨주마. 가락지를 끼우고 살찐 송아지를 잡으라고 말씀하시는 우리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십자가 대속의 은혜 안에서 예수님께서 내가 죄를 지었으니 내가 다 갚아주마. 네가 내 자식이니 내가 돌보아주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우리 기독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대속 제물이 되셔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청산하시고 병과 저주를 물리치시고 죽음과 음부를 이기시고 그리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부활은 완전히 이기셨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실 때 마귀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입니다.

3. 십자가의 결전
마귀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통을 감당할 수 없게 하여 대속제물 됨을 포기하게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실패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어찌하든지 십자가에 올라가서 너무 고통스럽게 때문에 손털어버리고 포기하게 만들려고 실패하게 만들려고 사람이 너무 괴로우면 못참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못참겠다고 하고서 포기하고 나오도록 마귀는 기다립니다. 그러면 마귀는 영원히 완전히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올라가서 그 억센 고통을 당하면서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그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20장 18절로 19절에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예수님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끝까지 견디시고 죽으심으로 첫 아담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다 갚으시고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승리하시고 우리를 자유와 해방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통해서 마귀는 참패했습니다. 인류를 잡고 있는 모든 조건이 다 십자가에서 철폐되고 만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밝히 벗어버려 승리하시고 해방과 자유를 선포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보다 더 귀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것이 십자가입니다. 자나 깨나 십자가, 일어나 앉으나 십자가, 십자가에서 우리가 변화를 받고 새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를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이 우리 크리스챤인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14절로 15절 우리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와~ 이 대단한 일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 우리를 정죄하는 법조문과 증서를 지워 버리고 제하여 버리고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고 우리를 다스리는 마귀들, 통치자들, 권세자들 무력화 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고 삼았다. 마귀가 영 십자가에서 구경거리가 되고 말았어요. 주님은 거기에서 완전히 100% 이겨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나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마귀를 100% 이긴 것입니다.

4. 부활하신 예수님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새 조상이 되십니다. 우리는 옛조상 아담을 섬기지 않습니다. 새 조상 예수 그리스도를 섬깁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절로 4절에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14~20)
부활하신 예수님, 사람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 어떻게 아냐고 하는데 저는 매일 예수님과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에 알아요. 죽으셨으면 예수님과 어떻게 매일 이야기하겠습니까?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증거가 충분합니다.
마가복음 16장 5절로 6절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이른 아침에 예수님 무덤에 가서 예수님 몸에 향유를 부으려고 가니 무덤문이 열리고 천사가 그 돌 위에 앉았는데 지키던 군인들이 얼굴이 백지장이 되어서 도망을 치고 무덤 안에 이편저편 천사 두사람이 앉아가지고서 너희가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구나. 예수님은 살아나셨다. 그것부터 시작해서 주일 이른 아침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난 주님은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났고 안식 후 첫날 저녁 모인 제자들에게 나타났고 제자들이 모였을 때 의심하는 도마에게 나타나셨으며 갈릴리 바다에서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셨고 베드로에게 그 다음에는 5백여 형제들에게 나타나셨고 야고보에게 마지막 나타나시고 감람산에서 마지막으로 나타나시고 승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나타난 증거는 성경에 얼마든지 있습니다만 가장 놀라운 증거는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이 복음이 온 천하만국에 전파되었다는 것입니다. 거짓말이 온 천하 만국에 전파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궁정을 기울여서 공산주의를 만든 스탈린도 한세대가 지나기 전에 공산주의가 이 땅에서 싹 사라졌습니다. 지금 북한의 공산주의는 그것도 진짜 공산주의가 아니고 엉터리 공산주의인 것입니다. 독재 공산주의. 그것 하나만 남았고 공산주의는 이 세상에서 사라졌어요. 왜 거짓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거짓이었다면 이 지상에서 2천년 동안에 만국에 전파될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 성령이 와서 우리 가운데 능력으로 역사하시고 계시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확실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사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로 26절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여러분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그러면 영원히 삽니다. 우리가 말하는 죽음이란 안믿는 사람의 죽음과 틀립니다. 안믿는 사람의 죽음이란 지옥가는 죽음이고 우리가 말하는 죽음이란 오픈 죽음입니다. 육신의 옷을 벗어버리고 영원한 영생의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 우리의 죽음인 것입니다. 우리는 옷갈아입는 프로세스지만 안믿는 사람은 영원한 지옥으로 가는 순간이 죽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의 부활이요 생명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생명이 내 부활과 내 생명으로 내가 이 땅에 살다가 예수님이 승천한 것처럼 몸을 벗어버리고 속사람으로 승천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3절로 4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하늘에 있는 우리의 산소망은 썩어지지도 아니하고 쇠하지도 아니하고 없어지지도 아니하는 유업인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은 아무리 좋은 집을 지어 놓아도 100년이 넘으면 다 썩어지고 낡아지고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옷도 썩어지고 낡아지고 더러워지고... 제가 지금 강단에서 내려다 보니까 여러분 참 우리 자매님들은 고와요. 물론 교회 온다고 연지찍고 곤지찍고 화장을 했겠지만 다 곱다고... 그러나 앞으로 한 50년만 지나고 이 자리에 앉아서 보면 눈뜨고 못보겠지. 육신의 장막집은 물질로 되어있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게 되면 별도리없이 썩어지고 더러워지고 쇠하여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산 소망이 있습니다. 천국에 올라가면 우리 영혼도 썩어지거나 더러워지거나 쇠하여지지 아니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천국은 썩어지거나 쇠하여지거나 더러워지지 않는 영원한 영광스러운 세계인 것입니다. 언제 한번 천국에 대한 설교를 하려고 요사이 준비하고 있으니까 그때 해서 더 자세히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죄와 사망, 율법과 정죄, 절망과 지옥을 영원히 이긴 정도가 아닙니다. 폐기처분해 버린 것입니다. 쓰레기통에 집어넣어서 쓰레기 배달부로써 던져버린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해방시켜 준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해방이 안돼요. 성령이 오셔서 우리에게 악과 죄를 청산시키고 욕심과 탐심을 없애주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17절로 18절에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옛날에는 마귀가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주님이 빼앗아서 주님 손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절로 55절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세는 마귀에게 있는데 죄도 마귀도 절단강산이 나서 다 폐기처분 당했으니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소유주가 된 것입니다.

<결론>
주님께서는 니고데모와 대화하실 때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뱀의 독이 올라서 퉁퉁 부어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광야에서 모세가 뱀을 만들어서 매단 그 놋뱀을 쳐다보자 마자 다 나아버린 것처럼 세상에서 죄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저주받고 병들고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가 절망에 처했을지라도 이제 예수 십자가 바라보면 성령의 능력으로 완전히 나아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해방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어야 될 주제는 자유와 해방입니다. 죄에서 자유를, 마귀에서 자유를, 병에서 해방을, 저주에서 해방을, 죽음에서 해방을 자유와 해방을 얻는 것이 여러분과 나의 삶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믿고 난 다음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늘 바라보십시오.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자유와 해방이 강물같이 넘쳐나오는 것입니다. 자유와 해방이 넘쳐나오고 그곳에는 희망이 있고 희망에는 꿈이 있고 꿈이 있는 곳에는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 그리스도의 보혈이 변치 않고 자유와 해방을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좋으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항상 우리는 감사하고 찬송할 때 포로 된 자는 자유를 눈 먼 자는 다시 보게 되고 눌린 자는 자유케 되고 하나님의 은혜의 가슴속에 용솟음치고 새 생명과 새 소망을 누리면서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찬송 한 장 부르십시다. 나는 이 찬송을 참 좋아합니다. 찬송가 160장입니다.
1. 무덤에 머물러 예수 내 구주 새벽 기다렸네 예수 내 주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네 어두움을 이기시고 나와서 성도 함께 길이 다스리시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2. 헛되이 지키네 예수 내 구주 헛되이 봉하네 예수 내 주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네 어두움을 이기시고 나와서 성도 함께 길이 다스리시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3. 거기 못가두네 예수 내 구주 우리를 살리네 예수 내 주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네 어두움을 이기시고 나와서 성도 함께 길이 다스리시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십자가에서 이기신 성령의 열매를 가지고 주님은 영원히 지금 우리와 같이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떠나서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옛날에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시간을 떨치고 영원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영원은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습니다. 영원은 온 천지가 영원이요 공간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지금 이 자리에 계세요. 그리고 예수님이 사망을 이기는 그 능력을 가지고 여러분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은 여러분을 사망에서 해방시켜 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제가 이 노래를 부를 때 눈물이 나는 것은 과거의 경험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50년 동안 목회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신앙상담에 찾아와서 눈물을 흘렸는지 몰라요. 폐병으로 암으로 절름발이로 자식 때문에 부부 때문에 가정형편으로 누구에게 의지할 수 없는데 그 사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니까 주님께서 그 사람들을 한사람 한사람 다 건져 내주는 것을 보았었습니다.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 예수님이 지금 이 자리에 계십니다. 그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서 우리와 같이 계신 주님이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버림받지 않았습니다. 혼자 있지 않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여러분 목자가 되신 주님이 이 자리에 계시므로 우리가 주님, 도와주실 것을 꼭 믿으십시다. 아멘.

 

/  2012. 4. 8. 부활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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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ANGE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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