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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이 위로하십니다 / 고후1:3~7

    • 박조준
      *.228.86.78
    • 2013.10.24 - 19:11  2050

이미 봉독한 말씀 가운데서 4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받들어 읽겠습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 가운데 '위로'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이사야 40장 1절에 보아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했습니다. 헨델의 불후의 명작 오라토리오 메시야가 바로 이 말씀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말씀으로 시작되는 것을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까? 그의 백성을 위로하기 위해서입니다.

 

누가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이 그가 자라신 곳 나사렛에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성경을 펴 읽으셨는데 바로 선지자 이사야의 글이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에게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을 친히 읽으시고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모든 슬픈 사람을 위로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보세요.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으로 가득합니다. 권력 있는 사람들도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돈 많은 사람도 마음이 상해 있습니다. 지식 많은 사람도 마음이 아파하고 있습니다. 인기 있는 사람도 마음이 상해 있습니다.

 

이 세상은 광야와 같은데, 이 광야 같은 세상은 삭막하기 이를 데 없고 가시 돋친 나무로 가득 차 있어서 조금만 잘못하면 그 가시에 찔려 깊은 상처를 입게 됩니다. 육신의 상처는 눈에 보이지만 마음의 상처는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 육신의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는 더 아픕니다. 육신의 상처는 외부적인 것이기 때문에 치료가 비교적 쉽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치료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성형외과나 정형외과에 가보면 육신의 상처를 입고 입원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령한 눈으로 보면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있는 사람의 수는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아마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의 상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도 모두가 마음의 상처를 입으신 경험이 계시고 지금도 마음의 아픔을 부둥켜안고 있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왜 우리가 마음의 상처를 입습니까? 물론 내 잘못과 실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다른 사람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습니다. 남편의 실수 때문에 아내의 마음이 상처를 입습니다. 아내의 죄로 말미암아 남편의 마음이 아파합니다. 부모의 잘못 때문에 마음 상한 자식이 있고 자녀의 저지른 죄 때문에 부모의 마음이 상합니다.

 

그밖에도 마음 상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돈 관계로 친하던 친구 사이에 상처가 생기고, 형제 사이가 원수처럼 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사업의 실패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분, 빚을 지고 갚지 못해 피해 다니는 마음 상한 사람, 믿는 사이에 빌려 준 돈 받지 못해 속이 상해 있는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어 오히려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녀의 진학이 여의치 않아 마음 상하는 부모, 졸업은 했지만 취직이 안되어 마음 상하는 이들, 결혼 문제로 마음 상한 이들, 상대방이 서로 맞지 않아 고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요사이 가정이 갈라서는 가슴 아픈 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먼저 세상을 떠나서 가슴 아파하는 이는 얼마나 됩니까?

 

우리가 육체에 외상을 입으면 반드시 치료를 합니다. 약을 사서 바르고, 붙이고 치료합니다. 붕대로 싸맵니다. 그런데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육체에 상처가 난 것을 치료하지 않고 그냥 두면 여러 가지 중대한 결과가 생깁니다. 그런데 마음에 상처가 싸매임을 받지 못하고 치료함을 받지 못하게 되면 낙심하게 되고, 비관하게 되고, 반항하게 되고, 절망하게 되고, 자포자기하게 되고, 좌절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의 상처를 치료받지 못하면 결국 그 성품이 아주 고약해지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를 치료받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여러 가지 육신적인 질병도 많습니다. 심장에 이상이 생깁니다. 혈압이 잘못됩니다. 소위 신경계통의 병이 생깁니다. 노이로제나 정신병도 대개 마음의 상처를 치료 못할 때 생기는 병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상처는 반드시 치료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우리 마음의 상처를 싸매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마음의 상처는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마음의 상처를 싸매시며 위로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 마음의 상처를 고쳐 주시며 위로해 주십니까?


첫째로, 이 대 자연계를 통해서 위로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이 자연계는 우리가 만족하게 살게끔 되어 있습니다. 우리 육신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햇빛이 있고, 공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마셔야 할 물이 있고, 먹을 수 있는 채소와 과일 그리고 곡식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실 때 우리 육신뿐만 아니고 우리의 심령을 위해서도 여러 가지를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 육신은 하늘의 태양 하나만 있어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태양 하나만 지으신 것이 아니고 달도 지으시고, 수많은 별을 지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심령을 위해서 지으신 것입니다. 사람은 해도 보고, 달도 보고, 별을 보고 살아야 합니다. 밤 하늘의 별을 보며 '소망의 별'이라는 말을 합니다.


물론 우리의 육신은 음식을 먹으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육신을 위해서 준비된 채소나 과일 그리고 곡식이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연계에 우리가 먹을 것만 만들지 아니하시고 아름다운 꽃들도 많이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봄 동산에 아름다운 꽃이 피기 시작해서 여름과 가을에 걸쳐 아름다운 꽃이 피는 자연 속에 살게 하는 것입니다. 겨울이 지나 이른봄에 나뭇잎이 나기 전에 꽃부터 피는 것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나리꽃, 진달래꽃, 벚꽃 같은 것은 나뭇가지에 꽃부터 핍니다. 하나님께서 삭막하고 추운 겨울을 보낸 우리에게 꽃부터 보면서 위로 받으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꽃들이 무엇을 합니까? 이 육신이 먹고 사는 데 반드시 꽃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꽃이 밥 먹여 주느냐?" 하면서 짜증을 냅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꽃은 밥을 먹여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위해서는 꽃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꽃도 좀 보아야 삽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위해서 꽃을 만드셨습니다. 왜 겨울에도 꽃을 볼 수 있게 합니까? 사람이 사는 데 그만큼 필요해서 그럽니다. 생화를 놓기가 어려우면 조화라도 갖다 놓고 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강단에도 꽃을 꽂고, 형편 허락하는 대로 여기저기서 꽃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공기도 그렇습니다. 우리 육신을 위해서는 공기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공기를 만드실 때 많은 공기가 쌓이면 아주 아름다운 푸른 빛이 나게 해서, 맑고 푸른 하늘을 쳐다보면 마음이 시원해지게 하신 것입니다.


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몸은 70%가 수분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물을 마셔야 합니다. 그런데 맑은 물이 깊으면 시원한 푸른 색깔을 내기 때문에 깊은 강물을 볼 때, 바다를 볼 때 얼마나 우리에게 시원한 느낌을 줍니까? 왜 요사이 집 앞에 강이 있고, 바다가 있으면 전망이 좋다 하여 집 값이 다른 데보다 비쌉니까? 사람에게 시원함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자연계를 지으실 때 우리의 마음이 위로 받게 하시려고 여러 가지로 고안하신 것을 볼 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아침에 동편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보면, 보는 사람에게 얼마나 희망을 안겨줍니까? 그래서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이 해 뜨는 것을 보려고 일출봉으로 모여드는 것 아닙니까?


봄 동산의 돋아나는 새 잎을 볼 때 얼마나 새롭습니까? 피어나는 꽃들을 볼 때 우리의 마음이 부드러워집니다. 여름철에 무성한 나뭇잎은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시원하게 해 줍니까? 문자 그대로 천자만홍(千紫萬紅)의 가을 단풍, 가을 저녁에 노래하는 벌레들의 자연음악, 온 땅을 은세계로 만드는 겨울의 흰 눈, 높이 솟은 산악과 기암 괴봉들, 아름다운 자연의 경치들, 이 모든 것은 우리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 지으신 것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시간과 경비를 들여가며 이 산 저 산을 찾아다니고, 남쪽 나라 사람들은 눈 구경하러 한국이나 일본 북해도를 찾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도시에 살다보면 시멘트 고층 아파트만 보고 자동차만 보고 살게 되니 마음이 삭막해지고, 물질만 생각하게 되고, 그 이상의 것은 잊어버리기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도시에 살수록 하늘을 쳐다보아야 합니다. 달을 바라보고, 캄캄한 밤 하늘의 별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하여 주셔서 이런 좋은 환경에 예배당을 허락해 주시고 나아와 예배하게 하신 것은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도시생활에서 시달리다가 이렇게 예배당에 오시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이 원만해질 수가 있고,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마음이 상했을 때 자연의 품에 안기게 되면 우리도 모르는 동안에 마음이 회복됩니다. 이처럼 자연계를 통해서 우리 마음에 주는 축복이 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을 잘 보호하고 환경을 깨끗이 유지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지난 달 27일 미국 컬럼비아대학과 예일대학에서 2년 동안 각국의 통계를 낸 것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했는데, 122개국 중에 우리나라가 95위였습니다. 이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환경을 아름답게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고 사실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위로하십니까?


둘째로,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우리가 자연계를 통해서 받는 위로도 크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특별계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곧 성경입니다.


이 세상에는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책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책에는 우리 인간의 심령에 위로가 될 만한 모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모든 상처를 고칠 수 있는, 말하자면 길르앗의 유향이 이 책 가운데 다 실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고 묵상할 때 우리 심령이 위로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큰 환난을 당하신 분 계십니까?


시편 50편 15절을 보세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시편 91편 마지막 부분을 보세요.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라고 했습니다.


가령 시편 30편 4절 이하를 보세요.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그 노여움은 잠깐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낙심되신 분이 계십니까?


시편 62편을 보세요.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왜 우리가 낙심합니까? 낙심될 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으세요. 그리고 그 말씀을 믿으세요. 새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 가운데 두려워하시는 분 계십니까?


이사야 41장을 읽어 보세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43장을 보세요.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도 불 가운데로 지나고 물 가운데로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 자리에 근심과 염려를 가지고 나오신 분 계십니까?


사도 베드로를 통해 주신 말씀을 들어보세요. 베드로전서 5장 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 6-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악인이 잘 되고 번영하는 것을 보고 마음에 의심이 생기십니까?


시편 37편을 보세요.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리라" 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지은 죄 때문에 상처난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나오신 분 계십니까?


이사야 1장 18절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했습니다. 여러분, 죄사함 받는 길이 있습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을 보세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신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죄, 더러운 죄, 무서운 죄를 범했어도 하나님께 자백하면 다 용서함 받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고독을 느끼시는 분 계십니까? 히브리서 13장 5절 말씀을 기억하세요.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주님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그런데 왜 외로워하십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위로하십니까?


셋째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예수님은 위로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 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사야 9장에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여 주시기 위함이라"고 주님이 오신 목적을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이적을 행하신 것도 죽음에서 오는 인간의 애통을 위로해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런 이적을 행하시면서 주신 말씀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물론 예수 믿는 사람도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슬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절망의 슬픔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별의 뜨거운 눈물을 씻어 주실 분은 예수님 한 분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위로하십니까?


넷째로. 성령을 통해서 위로하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성령을 가리켜 '보혜사'라고 한 것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보혜사'라는 말은 '위로해 주시는 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Com- forter'라고 했습니다.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기름으로 상징하기도 합니다. 기름을 상처에 바르면 고통이 멎고 회복이 빠릅니다. 성령의 역사가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의 상처를 없애 주시고 빨리 회복시켜 주십니다. 성령의 다른 상징은 바람입니다. 서늘한 바람은 우리를 시원하게 해 주십니다. 성령의 역사가 그렇습니다. 성령은 불로도 상징합니다. 불은 깨끗이 태우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해 주시는 것이 성령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 백성을 위로하십니다. 자연계를 통해서 위로하십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위로하십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위로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 마음의 상처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을 주어서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견딜 수 있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보혜사 성령을 영어로 Comforter라고 한다고 했는데, 이 뜻은 '힘으로 함께 하는 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에게 능력을 더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사람은 아무리 어려움에 부딪쳐도, 아무리 슬픈 일을 만나도, 아무리 실패해도 걱정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낙심하거나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아니합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싸이지 않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합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핍박을 받습니다. 그러나 버린 바 되지 않습니다. 거꾸러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자빠지지 아니하고 다시 일어납니다. 왜요? 하나님의 능력의 오른손이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힘을 더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근심과 염려, 슬픔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주님 앞에 나오면 그 심령이 새로움을 얻고, 위로를 받고, 힘을 얻고, 평화와 기쁨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4절에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위로를 받으면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나바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본래의 이름은 요셉이었습니다. 바나바는 그의 별명입니다. 어떻게 그런 별명을 가지게 되었습니까? 바나바는 위로를 잘한다는 뜻입니다. 그는 은혜를 받아서 다른 사람을 잘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고, 도와 주어서 바나바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 하나가 주님 앞에 나와서 먼저 위로를 받으시고, 새로운 힘을 얻어서, 이 고통과 슬픔, 근심과 불안 가운데 있는 우리 민족에게 바나바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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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상 긍정적으로 / 고후4:7-18조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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