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산을 찾은 우리 부부를 응원해 주듯 불어오는 바람결이 얼굴을 살며시 만져 준다. 산을 내려가는데 마주 오던 한 남자 분이 내게 명령하듯 말했다. "좌측통행하시오"(최근에 '우측통행'으로 바뀜). 그 퉁명스런 말투가 거슬려 맘이 내키지 않았으나 바른말임을 이내 상기하고 "아! 그러네요. 좌측통행 맞죠. 감사합니다"했다. 남편이 빙긋 웃으며 "자, 좌측통행하며 갑시다"하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좌측통행을 의식한 뒤로는 우측통행하는 사람들이 자꾸 눈에 거슬리는 것이다. 앞에서 다가오는 사람들 역시 솔잎을 만지며 꽃잎에 볼을 대느라 갈지자로 내려오고 있었다. 나도 좌측통행을 권면할 것인지, 아니면 원칙보다 행복의 행보를 존중해 줘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좌측통행은 공공 도로에선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지만 좁은 산길에선 최선의 원칙이 아니었다. 산길의 성격상 때로는 우측으로 때로는 좌측으로 때로는중앙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찾아온 깨달음은, 원칙이 물론 중요하지만 사랑 안에서 행하지 않으면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정죄함으로 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진리를 왜곡하는 일이라면 절대 타협할 수 없지만, 옳은 일을 하다가 이웃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다면 나의 정의감이 오히려 십자가의 은혜를 잊게 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우리 삶의 최우선 순위라면 좌측 통행보다 더 중요한 영혼을 얻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좌도 우도 아닌 그 나라가 우리의 마지막 관심이 되어야 하겠기에 말이다.
/ 들러리의 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