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시대에 수사들은 성도들을 일컬어 라틴어로 ‘비아토르(viator)’라고 했다. 비아토르는 여행자나 나그네, 곧 ‘세상을 지나가는 자’라는 의미다. 성경에서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우리를 나그네라고 하고 있지 않는가? 지금 우리는 이 세상을 지나가는 여정 가운데 있을 뿐이다. 가장 영광스럽고 위대한 축복은 현세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가장 귀한 축복은 아직 오지 않았고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순례자는 눈을 이 땅에 두는 사람이 아니라 위를 향해 드는 사람이다. 세상의 뜻이 아니라 하늘의 뜻에 민감한 사람이다.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이 영원한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순례자의 삶을 좀더 역동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 태도가 필요하다. 하나는 기억을 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대를 잘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지금까지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 기억했다. 애굽에서 모든 장자의 죽음에서 보호하시고 홍해를 건너가게 하신 그 하나님을 기억했다. 우리도 영적으로 구원받지 못할 자들을 그리스도의 피 값만큼 귀한 존재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향한 기대를 가졌듯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비된 것을 상속하라’고 하신 약속을 붙들고 장차 다가올 삶을 기대해야 한다. 이러한 기억과 기대가 떠나가지 않을 때, 우리는 순례자의 삶을 잘 감당해 나갈 수 있다.
(오정현의 "신동행기" 중에서)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이 영원한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순례자의 삶을 좀더 역동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 태도가 필요하다. 하나는 기억을 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대를 잘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지금까지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 기억했다. 애굽에서 모든 장자의 죽음에서 보호하시고 홍해를 건너가게 하신 그 하나님을 기억했다. 우리도 영적으로 구원받지 못할 자들을 그리스도의 피 값만큼 귀한 존재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향한 기대를 가졌듯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비된 것을 상속하라’고 하신 약속을 붙들고 장차 다가올 삶을 기대해야 한다. 이러한 기억과 기대가 떠나가지 않을 때, 우리는 순례자의 삶을 잘 감당해 나갈 수 있다.
(오정현의 "신동행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