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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믿음과 고난, 은혜의 양면 / 빌 1:19-30

    • 말씀묵상
      *.139.230.43
    • 2011.07.23 - 23:28 2009.04.27 - 19:46  2857  19
  믿음을 굳게 붙든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향한 신뢰를 언제까지나 놓지 않는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겠다는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오직 그 길을 달려갈 때 성도의 생애는 어느덧 하늘의 기쁨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며 오늘을 살아가자.

19절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고난이 영적 축복의 계기가 된다는 것은 고난 자체가 무슨 영적능력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성도들의
기도 제목이 되게 하고 성도로 하여금 성령의 도우심을 더욱 간구하여 그분의 긍휼을 경험하게 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본문은 19절의 '바울 자신의 구원'과 20절의 '그리스도가 더욱 존귀하게되는 일'을 통해 성도의 구원과
그리스도의 영광이라는 주제가 깊은 연관을 가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영광과 성도의 "구원"
(소테리아 - 구출, 구원, 건짐)이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사실은, 성도의 구원의 기쁨은
그리스도를 전심으로 높이고자 하는 모습에서 분명히 확인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이는 성도가 구원의 진정한 기쁨과 확신을 맛볼 때 '그리스도의 영광'이 얼마나 존귀한 것인지를 비로소 알게 된다는
의미와도 같다. 본문에 담긴 또 하나의 주제는 기도와 성령의 도우심이다. 본문은 형제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이라는 두 가지 다른 은혜의 방편을 기록한다.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성도의 삶!
그 구원의 감격의 길에는 두 요인, 즉 기도와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전자는 인간적인 요인에 보다 가깝고 후자는 전적으로 신적인 영역이다. 결국 본문은 모든 일의 배후에는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하며, 그것은 형제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성령의 사역에
우리가 무슨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할 수는 없으나 기도는 인간이 성령의 도움의 손길에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통로임을 성경 곳곳에서 증거한다(눅 18:1~8, 살전 5:17).
기도를 소중히 여기던 바울의 생애는 우리에게 기도의 소중함을 다시금 점검하게 한다(빌 1:4, 딤전 2:1).

20절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사도 바울의 소원은 부끄러움이 없고 담대하게, 그리스도가 사도 자신의 삶과 죽음을 통해 더욱 존귀하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서 나오거나 혹은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는 일이 자신이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는 일에
하등의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보다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로 언급되어 있는 것이다. 사도가 본문에서 언급하는 "몸"(소마 - 신체, 시체, 형체, 종)은 앞서 나온
"기대와 소망"과 뒤이어 나오는 "살든지 죽든지"라는 말과의 상관성을 볼 때 단순히 신체를 지칭한다기보다는
전인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21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구절로서 자신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그 영향을 힘입어 승리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보여 줌과 동시에 이 현재의 연합이 사후에는 더욱 자유로운 연합으로 발전되어 갈 것임을 명백히
밝힌다. 무엇보다 본문은 성도의 삶과 죽음이후가 유익한 것도 그리스도 때문이다.
이처럼 오직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생애만이 현세와 내세 모두를 담대하게 맞이하는 원동력이 된다.
"죽는 것"이라 함은 죽는 행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후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29절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는 대표적 자세는
첫째로 '그를 믿는 것'이고, 둘째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동시에
인간의 책임을 담고 있다.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은혜를 주셨으니 더욱 굳게 그 믿음의 도리를 붙들자.
  또한 고난이 결코 하나님이 성도를 버리는 증거이거나 그분으로부터 멀어져야 할 핑계가 될 수는 없다.
도리어 성도는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라면 기뻐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이 진리를 우리의
삶에 기꺼이 적용하자.

출처 : 말씀묵상(두란노 / 200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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